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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그 여름날, 유년시절의 동심
[[제1469호]  2015년 8월  1일]

금년은 가뭄을 동반한 여름이 성급히 찾아 왔는가 싶었는데, 비를 기다리는 심곡(心曲)에 늦 장맛비가 대접을 받는 여름이라니. 그러나 그 유년시절의 여름은 언제나 푸르렀다. 여름 방학 때엔 아이들과 함께 산과 들, 냇가를 싸돌아다녔고 장마가 지면 봇도랑으로 거슬러 오르는 송사리 떼를 그물로 잡기에 신바람 났었지.

고향이 없는 이도 있을까? 나의 고향은 경기도와 충북의 경계를 이루는 이천 장호원으로 우람진 백족산이 병풍처럼 우뚝 서 있고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오는 냇물에 여름이면 물장구치던 곳이다. 유년시절의 옛 고향을 둘러보고픈 심사로 이웃에 사셨던 이모님 댁에 들러 그 여름날의 동심(童心)을 떠올려 본다.

여름날, 맑은 하늘에 소나기 삼형제라도 지나갈 때면 진흙길 골목을 허리춤에 책 보따리를 질끈 매고 달음박질하던 국민(초등)학교 등하굣길, 무더운 여름 땡볕에 밭일 나가셨던 나의 어머니이신 시골 아줌마는 땀과 소낙비에 삼배적삼을 흠뻑 적시고 들어오시면서도 "한줄금 시원하게 잘 내리는 구먼" 하시던 어머니에 매달려 땀에 전 엄마의 냄새에 젖어보곤 했는데, 어느새 먹구름은 지나가고 동쪽 하늘엔 무지개를 펼치니 언제 소나기가 있었던가 싶게 뜨거운 태양빛이 쏟아진다.

해는 기울어 저녁노을은 촉촉이 젖은 풀잎을 물들이더니 이내 어둠이 사방에 고즈넉이 내리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앞마당에 멍석 깔고 그 곁에 눅눅한 보릿짚에 쑥을 덮어 모깃불을 놓으시고는 끈적이는 땀을 씻으려고 우물가로 가셨다. 우물물은 차가웠다. 어머니에 등멱을 해 드리며 바가지로 물을 떠서 등에 끼얹으면 ! 차가워" 하며 소스라치시던 모습에 심술궂게도 자꾸만 물을 끼얹으며 등을 밀어드렸다. 늘상 그랬듯이 어둠 속에서도 드러나는 엄마의 하얀 젖퉁이를 바라보며 젖꽃판을 어루 더듬할 때면 수줍어해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오늘도 나의 눈가에 어린다.

저녁 어둠이 깔리면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나는 어머니의 부채 바람을 타고 오는 모깃불의 풋풋한 내음에 눈을 감았다. “얘야, ‘반딧불' 좀 보렴, 옛날 가난한 선비는 얇은 비단 주머니에 개똥벌레의 반딧불을 모아 넣고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단다" 하시는 어머니의 해박하신 말씀에 나는 벌떡 일어나 반딧불을 잡으려고 뛰어다녔었던 시골집 마당, 달빛아래 무심코 바라보는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저 별은 엄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무수한 별들은 은하수를 이루고, 흩어져 멀리 홀로 떨어져 있는 별은 외롭게도 유난히 반짝인다.

삽상(颯爽)한 바람이 나의 볼을 스칠 때, 살짝 눈을 떠보니 별들은 내 눈앞에 내려와 있었다. 유난히도 많았던 별들이 밝게 반짝이던 그날 밤, 우주진()들이 빛줄기를 그리는 유성들에 화려한 별잔치가 비단 그날 밤 뿐이었으랴! 이렇듯,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던 희미한 기억들, 이웃집 어른들의 정겨운 두런거림이 풀벌레 소리에 실려 멀어져 간다. 그 여름날, 밤이 깊어가노라면 누워 있는 철부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진정(眞情)한 가냘픈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나의 가슴에 각인(刻印)되어 회상(回想)되니 그 여름날의 동심'이 오늘도 추억 속에 가물거린다.

성하염열(盛夏炎熱)의 복중(伏中)에 시원한 녹음을 찾아 머리에 스치는 한 줄기 써내려 갔던 글이 나른한 낮잠에 놓쳐버렸으니, 다시 기억을 살려 복기하려함에도 이 글은 놓친 물고기를 더듬는 형상(形象)이 되었다. 놓친 고기는 언제나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 동 식 장로<동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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