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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삶과 죽음
[[제1570호]  2017년 11월  4일]

산다는 것이 어릴 적에는 기쁨이요, 성년이 되어서는 책임이며 노년에 들어서는 지루함이요, 죽을 때는 슬픔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철학자의 관심 주제가 삶과 죽음이었다. 사생관은 바로 인생관이기도 하다. 죽으려면 살아야 한다. 죽음은 일생 삶의 결산이자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임종할 오른편에 있던 죄수는 마지막에 유종의 미를 거두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렀지만 3 동안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던 가롯 유다는 마지막에 스승을 30 배신자가 되어 자살로 끝을 맺었다. 사람 모두 똑같이 살았지만 마지막 모습은 하늘과 같았다. 우리들도 사는 것과 죽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들의 문제다. 피할 없는 일이요, 숙명이라 일찍이 셰익스피어도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같다.

그의 <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보니 그렇다.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으로 참는 것이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것은 잠자는 -오직 그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극치로다. 죽음은 잠드는 ! 잠들면 꿈을 꾸겠지? , 그게 곤란해! 죽음이란 잠으로 인해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어떤 꿈이 찾아올 것인가 그게 문제야. 이것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 때문에 무참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세상의 해침과 비웃음과 권력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와 변함없는 사랑의 쓰라림과 끝없는 소송 사태, 관리들의 오만함과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모욕을 자루의 단검으로 모두 해방시킬 있다면 누가 참겠는가?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고에 신음하며 진땀을 빼려고 하겠는가? 사후(死後)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나그네 가서 돌아온 없는 미지의 나라가 의지를 흐리게 하고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겪어야 환란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하여 미혹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한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하늘이라도 찌를 웅대했던 대망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삶은 엄숙한 것이요, 신기한 것이기도 하다. 장소를 이용하는 여행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이도 있고 기차나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가는 이도 있지만 그냥 걸어서 가는 이도 있다. 마라톤 선수처럼 빨리 가는 속도를 목적으로 삼는 이도 있지만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천하를 주유하며 동가숙서가식하는 여행자 또는 방랑객으로 사는 이도 있다. 여하튼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는 우열이나 맞고 틀림(正誤) 문제는 아닌 것이다. 열심히 산을 오르더니여기가 아닌가 하고 되내려오는 이도 있고 여드레 팔십 황소걸음으로 걸어도 실팍하게 자기 길을 다지며 가는 이도 있다. 여하튼 중간 지점에 서서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중간점검은 필요한 같다. 과거는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고 미래는 결단하기에 따라 달라지며 현재는 행동하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해강은 <가던 멈추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골짝을 예는 바람결처럼/세월은 덧없어 가신지 이미 천년//() 길건만 인생은 짧아/ 슬픔도 지내나니 흙이러뇨// 지고 뿌리는 저녁/마음 없는 산새의 울음만 가슴 아파//천고(千古) 씻지 못할 /어느 곳에 멈추신고/나그네의 어지러운 발끝에/ 이슬만 채어//조각구름은 없이 오락가락하는데/옷소매를 스치는/ 떨기 바람//가던 멈추고 서서/막대 짚고 고요히 머리 숙이다구원받은 신앙인들은 죽음의 문제가 두려움이 아니라 당연한 통과절차로 본다. 대도무문(大道無門/ 길에는 문이 없다)이라든지 나무는 가시가 없다든지 하는 속담처럼 신앙인의 진로에 죽음은 장애물이나 슬픔이 아니다. 나은 곳을 향해 좋은 모습으로 발전해가는 비상(飛翔) 또는 해탈(解脫) 보기 때문이다.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가진 자에겐 삶이나 죽음 모두가 같은 일로 보이는 것이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더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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