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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사이비 공관병》‘문 일병’ 이야기
[[제1570호]  2017년 11월  4일]

일반 사회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공관병(公館兵)》이라는 용어가 최근 한동안 각종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었다. 공관병이란 지휘관이 거주하는 공관의 관리를 담당하는 병사 말한다. 공관병 제도 공관의 관리와 지휘 통제실과의 연락이나 유지 등의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의 발단은 (59) 현역 육군대장(작전사령부 사령관) 부인이 공관병들에게 행한 비인격적인 언행으로 인하여 이른바갑질의혹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사령관의 공관병들은 120평에 이르는 사령관의 공관을 관리하면서 조리(調理), 빨래, 다림질, 텃밭 가꾸기, 관리, 화장실 청소 등의 잡무를 담당하였는데 사령관의 부인이 공관병들을 노예 부리듯 하였다는 실로 듣기에도 민망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내가 징집영장을 받고 육군에 입대한 것은 1961 5.16혁명 직후였다. 당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나는 3학생 예닐곱 명에게 영어를 그룹지도하다가 입영하였다. 당시만 해도대학생 입영자 뜻하는《학보병(學保兵)》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일반병은 36개월을 복무하는데 학보병은 절반인 18개월 후에 귀휴(歸休) 조치가 되던 때였다.  

논산훈련소에서 3개월여에 걸쳐 전후반기 교육을 끝내고 나서 춘천 101보충대를 거쳐 북쪽으로 밀려올라가 강원도 화천지역 어느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던 포병부대에 배치가 되었다. 부대를 배속 받은 3개월 정도가 지났을 , 일병이라는 신병 사람이 우리부대에 들어왔는데 고향이 서울이라고 하여 반가운 나머지 서로 자기 집의 위치를 설명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불과 6, 7개월 전에 내가 가르치던 3여학생 사람인김희숙양의 오빠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병이 우리부대에 배속된 , 그의 부모님이 아들면회를 다녀가면서 포대장에게 일병이 바로 자기 딸을 가르치던 사람이라는 것을 귀띔한 모양이었다. 며칠 포대장의 호출을 받은 자리에서 자기 집에 입주해서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전방지휘관의 숙소에 나가 일을 돌보는 병사를 《당번병》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사이비 당번병》으로 포대장 숙소에 나가 가족과 침식을 함께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맏딸과 5학년짜리 맏아들을 가르치게 되었으니 과거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의 과외지도의 경험을 다시 재현하게 셈이었다. 포대장은 아이들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나를 《문일병 아저씨》로 소개하지 않고 《문정일 선생님》으로 소개하였다. 시간에 두어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면 함께 사시던 외할머니가 방에 들어오셔서 아이들을 내보내고 나에게 휴식시간을 갖도록 배려해 주시곤 하였다. 마치 집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의 군복무 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포대장은 후방특명을 받아 전속(轉屬)되는 바람에 8개월에 걸친 《사이비 공관병》으로서 일병의 임무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군에서 제대 , 포대장의 성함, 계급과 군번을 근거로 그의 소속부대를 찾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당사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라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20 년이 지나서 같은 대학에 근무하던 ROTC단장의 도움으로 전북 완주에 거주중인 포대장 댁의 연락처를 확인할 있었다. 대전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40분간 달려서 완주에 도착, 옛날 초등학교 6학년이던 맏딸과 반가운 재회가 이루어졌다. 맏딸은 이미 가정을 이루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가정주부였다. , 포대장 내외분은 별세하셨지만 아직도 가정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맏딸에게서 전화연락이 오고 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불미스런 《공관병 혹사사건》은 물질적 풍요로 인하여 지휘관의 공관생활이 귀족화됨에 따라 인간의 심성(心性) 기계화되고 인격존중의 정신이 실종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는 야만인 인생을 사랑한다 했던 주요섭(朱耀燮, 1902~1972) 선생의 《미운 간호부》라는 수필에 나오는 글귀가 머리에서 맴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

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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