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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고모를 찾아가다
[[제1571호]  2017년 11월  11일]

그러던 선태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배는 캄캄한 밤에 출발하기 때문에 눈이 보이는 사람들도 늦은 밤에는 주변이 보일 것입니다. 게다가 배를 타려는 피난민들은 크기가 크고 많아 그것들을 배에 싣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굶을 대로 굶어서 체격이 작고 깡말라 있는 선태가 보따리에 살짝 숨어 배에 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태는 자기 몸집보다 하나를 더듬더듬 찾아냈습니다. 그러고는 짐들 틈에 살짝 끼어 몰래 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겨우겨우 강을 건넜지만 눈도 보이고 길도 모르는 선태. 그런 선태가 경기도 양주에 있는 고모 집까지 더듬어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태는 자기도 모르게 교회학교에서 배운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눈먼 선태를 인도해 가고 있는 건지 없었으나, 선태는 강을 건넌 후엔 귀에 들리는 소리에만 의지해 나아갔습니다. 소가 끄는 수레와 피난민들의 발자국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오직 고모 집을 향해 끝없이 걸어갔습니다. 가다가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소리가 들릴 때면 주세요, 주세요하며 구걸을 했습니다.

누구나 없이 먹을 것이 귀하던 때에 몇몇 착한 농부들은 자신들이 먹으려고 점심식사를 선태를 위해 선뜻 내주었습니다. 그들이 먹던 바가지에 밥과 열무김치를 그득하게 담아서 말이지요.

선태에게 밥은 어디에서도 맛볼 없는 진수성찬이었습니다. 꿀보다도 달고 이제껏 맛보지 못한 하늘나라 음식 같았습니다.

옛날 옛날에 모세 할아버지와 함께 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다는데, 그것도 이런 맛이었을까?하고 선태는 생각했습니다.

선태는 무서운 전쟁중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경기도 양주로 가는 동안 굶지 않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개울도 건너서. 울퉁불퉁한 논두렁을 건널 걸려 넘어져 구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넘어지고 부닥치면서도 계속 고모 집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갔습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굳은 신념과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이를 악물고 버티며 찾아간 것이지요.

마침내 도착한 고모 !

선태는 이제 살았다는 안심과 희망이 하늘로부터 함박눈처럼 자신의 머리 위로 쏟어져 내리는 같았습니다.

이제 선태는 살았습니다.

그리도 애타게 찾던 고모 앞에서고모!하고 힘차게 불렀습니다. 큰소리로고모! 고모!하고 불렀습니다.

누구요?고모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드디어 선태가 고모를 만난 것입니다.

고모는 선태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시며 이렇게 거지꼴이 되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아마 고모도 바로 얼마 전까지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외동아들 선태를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태는 서울에 있는 집이 폭격을 맞아 없어져 버린 이야기, 돌아가신 아빠와 엄마 이야기, 선태의 눈이 보이게 이야기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태는 이제 고모가 아무것도 없게 조카를 끌어안고 위로해 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혼자 왔는지 대견하고 기특해 하며 반겨 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고모는 선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보는 사람은 필요가 없다. 소는 눈이 있어 일을 하고, 개는 눈이 있어 집을 지키는데, 너는 이제 필요도 이유도 없는거야. 집에 있지 말고 멀리 떠나서 강물에 빠져 죽든지 모진 매에 맞아 죽든지 총에 맞아 죽든지, 당장 죽어버려라. 집안에 같이 눈먼 사람이 있으면 재수도 없고 동네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손가락질을 받고 집이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니 빨리 없어져라.

그러면서 고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선태와 같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선태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눈먼 선태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친척인 고모를 찾아서 죽을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반겨 주기는 커녕 빨리 죽으라니.

선태는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팠지만, 고모도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모 집에서 당분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고모는 달라지지 않았고, 선태는 그곳에서 지옥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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