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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죽음의 문턱에서…(1)
[[제1573호]  2017년 11월  25일]

이제부터 여기서 살아!순식간에 선태는 어느 헛간 같은 곳에 혼자 남겨져 버렸습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일까? 빈집일까? 누가 사는 곳일까? 고모 집에선 얼마나 떨어져 있는 곳일까?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하나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위를 계속 더듬어 보았지만 선태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물건들만 만져졌습니다. 자꾸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는 것이 여우나 늑대가 나올까 겁까지 덜컥 났습니다.

선태가 더듬어가며 겨우 발자국을 나오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있다가는 여우나 늑대에게 잡혀 먹히게 될까봐 겁이 선태는 무조건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나무 위에서 두려움에 떨며 밤을 꼬박 지새웠지요.

새벽이 되었는지 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끌고 가는 소의 방울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아저씨, 살려 주세요. 여기가 어디예요?

그러자 지나가던 농부 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왔니? 여기 있는 거냐? 여기는 사람 시체를 두는 상여집이란다.

선태는 어젯밤의 막연한 무서움과는 다른 오싹한 소름이 순식간에 온몸에 돋았습니다.

마음씨 좋은 농부 아저씨는 선태를 나무에서 내려주고 아저씨가 일하는 밭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일하다가 드시려고 가져 아저씨의 음식을 선태에게 선뜻 내어주기까지 하셨지요. 그리고는 선태를 고모집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셨습니다.

고모는 선태를 보자마자 거기서 귀신에게 잡혀가지 않고 왔니? 동네 아저씨가 데려다 주었으니 이제 창피해 동네에서 어떻게 사냐?하며 난리를 쳤습니다. 사돈 할머니는 골방에 선태를 가두어 놓고 인정사정없이 때렸지요.

고모 집에서의 생활은 선태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날이 갈수록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모든 가족은 하루라도 빨리 선태가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못살게 굴다 보면 선태가 자기 발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전쟁이 길어져 가자 인민군들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 마구 약탈하고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9월이 되고 추석이 되자 고모 집에선 빈대떡도 부치고 닭도 잡아 국을 끓여 식구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고모는 선태를 뒤뜰에 두고 친척들이 돌아갈 때까지 숨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선태는 고모가 무섭기도 했고, 중간에 나갔다가 들키면 엄청나게 매를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저녁 시간이 때까지 조용히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뒤뜰에 얌전히 숨어 있으면 고모가 나를 예뻐해 주시겠지?

언제쯤 나를 불러서 맛있는 부침개도 주고, 고깃국에 밥도 말아주시려나?

선태는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사돈 할머니가 선태를 불렀습니다.

고모 말씀대로 하루 종일 조용히 있었으니 이제 먹을 것을 주시겠구나.

선태는 기대에 부풀어 앞뜰로 나갔습니다. 앞산에 가서 먹일 풀을 베어 오너라.할머니는 지게 가득히 풀을 베어 와야 먹을 것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맛있는 밥을 먹을 거라는 기대가 사라져 버린 것은 물론이고, 뱀도 나오고 낭떠러지도 있는 산에 가서 어떻게 낫으로 풀을 베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지게에 담아와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결국 선태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선태는 보이지도 않는 풀을, 사용해 적도 없는 낫으로 베려다가 오른쪽 둘째 손가락을 먼저 베고 말았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옆에 있는 나뭇잎을 뜯어 베인 손가락에 감싸고 피가 멈출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선태는 베인 손가락을 움켜쥐고 밤이 깊은 속에서 이러고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이 한없이 처량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인간으로 생각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선태는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선태는 바지에 있는 허리띠를 풀러 자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죽지 말아라! 네가 자라서 이야기를 하고 사는 날이 것이다.

깜짝 놀란 선태는 죽으려던 생각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분명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자꾸 죽지 말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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