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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갈 길을 잃고…
[[제1576호]  2017년 12월  23일]

차츰 짖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요란스럽게 들려오는 보니 동네에 다다른 것이 확실했습니다.

, 살았구나!'

개가 요란하게 짖던 어느 집에 다다르자 수수깡과 짚으로 만든 대문이 나타났습니다. 살짝 밀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여보세요, 도와주세요!하고 외쳤습니다.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전쟁 중에 도와달라는 사람이 어디 하나둘이겠습니까?

선태는여보세요, 도와주세요! 큰소리로 다시 외쳤습니다.

잠시후 어떤 사람이 나오더니 보는 선태를 보고는 선뜻 짚단을 쌓아 놓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속에 들어가 자라고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짚단 속은 불을 지핀 방처럼 따뜻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깊이 들어가면 밑에는 따뜻한 안방이 되고 위에 덮은 짚단은 추위와 바람을 막아주는 이불이 되기 때문에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피하기에는 괜찮은 곳입니다.

사실 선태의 모습은 거지꼴이었습니다. 거지를 집에 들여 재워준다는 것은 아무나 베풀어 주는 선심이 아닙니다.

짚단 쌓은 곳에서 있도록 해준 것만으로도, 인정을 베풀어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천대와 멸시를 받고, 처마 밑에서 비만 피하고 있어도 저리 가라며 소리치고 설움을 안겨주는 사람이 많은데, 짚단 속에서 잠이라도 있도록 베풀어 주는 사랑이 선태는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선태의 탈출은 결코 편안하거나 행복하거나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롭고 처량한 어린 거지의 삶일 뿐이었습니다.

고모네 집에 있을 때는 그나마 비바람은 피할 있었지만, 탈출 후에는 날마다 먹고 자는 일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선태는 죽기를 작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할머님이 아무리 교회 가는 것을 막아도 주일학교 출석을 거르지 않던 선태였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좋은 길을 보여주실 것이라는 목사님의 말씀과 성경 속의 이야기들이, 선태를 고통 속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로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태는 졸지에 거지가 되어 경기도 이천, 여주, 안성을 비롯해 충북 음성, 진천, 대전, 대구, 영주, 안동, 전라북도를 거쳐 부산 등지로 2년여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거지들에게 제일 좋은 계절은 역시 여름입니다. 여름에는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안방이 되고 하늘은 이불이 됩니다. 유일한 어려움은 자다가 비가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거지는 제대로 목욕하기가 어려운데 비를 쫄딱 맞으면 비가 그대로 목욕물이 되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은 거지들에게 지옥같은 계절입니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면 어디 가서 어떻게 잘까 하는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남의 대문이나 처마 밑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새우다가 날이 밝으면 또다시 덜덜 떨면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해야 하지요. 머물러 있으면 굶어죽거나 얼어 죽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험한 개울을 건너 깊은 산길을 걸을 때가 있는데 이상한 짐승 소리가 들려오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선태는 주일학교 배운 찬송가를 큰소리로 부르면서 무서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거지 떼들이 여기저기에서 득실거리며 부산역,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영도다리 , 여관집, 집집마다의 아궁이 옆에서 구걸을 했습니다.

이렇게 곳곳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바로 활동할 있는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다른 거지의 구역을 가게 되면, 몰매를 맞고, 누구도 모르게 죽음을 당할 있는 것이 거지 양아치들의 세계입니다. 이처럼 구걸과 양아치들의 생활도 경쟁인지라 거지 생활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태는 다시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울은 선태의 고향이기도 하고 미군 부대가 많은 용산, 삼각지, 서울 근교를 돌면서 거지 생활을 하는 것이 낯선 부산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태는 서울까지 어떻게 것인가가 걱정이었습니다. 서울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데 선태에게는 기차표를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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