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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회상! 1961.5.16혁명 전후 - 답(答)을 찾는 그대들에게…(13)
[[제1581호]  2018년 1월  27일]


1945 8.15 우리나라는 독립은 했지만 매년 31억여 달러의 미국 원조를 받아야 사는 극빈국 처지였다. 1950 625전쟁 후는 더욱 열악해져 정부 예산의 54%를 미국의 원조로 충당해야만 했다. 그런 비참한 와중에 이승만 정부의사사오입’의 부정선거가 자행되자 419학생혁명이 일면서 집권자유당 정부가 무너졌다. 그리고 민주당의 신파 윤보선-장면총리 내각이 출범했다. 민주당은 집권하자 당내 신구 파쟁 격화에 휘말렸다. 정권참여에 실패한 구파들은 신민당이란 이름으로 분당했다. 집권 신파도 오위영 중심의 노장파와 이철승 중심의 소장파 및 김대중파로 분열되고… 이 중 소장파는 내각인선에 다시 불만을 품고 신풍회란 서클로 독립선언을 하고, 거기에 김영삼은 또청조회’란 서클을 특별히 따로 만들고… 그 분열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다. 이런 정치인들의 아귀다툼은 경제 위축, 한총련의 이석 씨(조선 최후의 왕손) 몰매치사 등등의 어지러운 사회 모습들을 초래했다. 이런 판에 대학생들은 북한 학생들과 판문점에서 직접 대화(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大韓民國’호는 그야말로허리케인을 맞은 선박’ 꼴이 되었다. 마침내 61 5.16 박정희 소장을 앞세운 군사혁명이 일었다. 국민들은올 것이 왔다’고 여겼다. 혁명정부는 즉각 경제 5개년계획을 세우고수출입국-민족중흥’의 국가재건에 나섰다. 그 당시 우리 수출은 수산물, 중석 등의 1,000만불 수준이었다. 그것도 일본 중심 물물교환형의 무역이었다. 박정희 혁명정부는 해외진출경제를 단행했다. 수출선원 송출, 건설근로자 사우디 진출, 파독광부간호사 송출 등 인력수출을 단행하고 밤낮없이 고속도로 공사도 진행했다. 국민들은 일심(一心)으로 응했다. 당시 국민들은 모두 우국심, 구국심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5,000만불→1억불→5억불 수출의한강의 기적’이 일기 시작했다. 그 즈음 박정희 대통령이 구멍 뚫린 런닝셔츠를 입고 있었다든지, 허리띠가 구멍이 연필이 들어갈 정도로 낡았다든지, 청와대가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든지… 등의 이야기는 일상이었다. 대통령 박정희의 이런 정치는 레닌혁명과 같이 프롤레타리아(빈자) vs 부르주아(부자)  가르고 부자의 것을 빈자에게 옮겨 나누어 주는 식의 이데올로기 혁명이 아니었다. 모두 함께일’하여 국가재건(國家再建)을 하자는 혁명이었다.

1966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베트남전 참전 7개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일본 다음 아시아 제2위 경제강국이었던 필리핀은 한국 대통령을 홀대했다. 배정된 방이 존슨 미국 대통령을 수행한 미국 국무장관보다도 작았다. 그즈음까지도 한국인은 점심을 거르기 일쑤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30달러였다. 필리핀은 299달러로서 한국을 무시할 만했다.

10년 후(1979), 드디어 필리핀과 한국의 경제 처지가 역전됐다. 한국은 1647달러로 증폭했으나 필리핀은 643달러였다. 그 무렵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은 그간에보릿고개’ 식량사정 때문에 엄히 금지했던 쌀막걸리를 자유롭게 담글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발표를 했다. ‘! 쌀막걸리를 먹게 되다니….’ 온 국민이 감탄했다. 박정희 정부가 국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개량 벼품종통일벼’ 쌀 증산에 힘쓴 노력을 그 당시 성인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박정희는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 건축가’, ‘흑묘백묘(黑描白描)’론으로 중국 경제를 성공시킨 등소평의 중국 개혁은 박정희를 모델 삼은 것이라고 평했다. 오늘날 독일의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는한국은 1960년까지도 1인당 GDP 79달러에 불과하여 가나와 수단 같은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오늘날(21세기) 세계 7위 무역 국가로서 OECD회원국이다…”고 게재하고 있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도 정주영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옛날에는 유신(維新)이니… 비판의 말을 듣던 박정희 대통령이… 영화를 통해서 본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서… 서울에 가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는데! 2018~오늘, 우리의 한국은 너무 변질되었다. 예시하면 애국심을 말하면 꼴통 보수가진 사람’의 대변자로 취급된다. 이를 항변하면 오늘의 1970~1980세대들(특히 정치인)지금은 그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한다. 구국심, 애국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표현할지에 견해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가경제발전국가수호문제에 관한한 생각<思國心>하고 걱정<憂國心>하는 마음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국민의 도리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명(召命)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장로<관세사, 경영학 박사, 울산 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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