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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호]  2018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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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사랑의 나눔과 베푸는 신앙
[[제1590호]  2018년 4월  14일]

선태는 하루를 24시간에서 48시간으로 쪼개어 쓰지 않으면 학점을 따는 일조차도 해내기 힘들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대학 졸업 신학교에 진학할 꿈을 가진 선태로서는 학문만 공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학문과 더불어 신앙 훈련과 헌신적 봉사 활동을 같이 해야겠어. 그래야만 지도자의 길을 함께 걸을 있을 거야.

그리하여 주일이면 어김없이 해방교회에 나가 중고등학생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해방교회는 버스로 용산중학교 입구에 내려서, 높은 언덕을 40~50 올라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거리였습니다. 가는 길에 열려진 하수구에 빠지기도 하고, 자전거나 손수레, 노점상들에게 시달려야 하고, 전봇대와 부닥치는 일도 많았지만 선태는 모든 일이 훌륭한 성직자가 되는 훈련으로 생각하고 이겨냈습니다.

어쩌죠? 교회 살림살이가 너무 어려워서 이렇게 고생하며 봉사해 주시는데 식사 끼도 대접해 드리지 못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식사는 제가 해결할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시는 모두가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던 터라, 교회의 재정 역시 넉넉지 못해 주일 예배를 드린 오후 청년 집회에 참석하려면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7 30분이 기숙사 아침 식사 시간인데, 선태는 교회에 가기 위해 7 전에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으므로 아침도 먹고 굶어야 하는 날이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청빈 역시 성직자 훈련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한 선태는, 시간이 귀중한 청빈 훈련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돈이 없는 선태는 기숙사에서 주는 식권까지도 줄여 필요한 곳에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에 끼씩, 끼씩 금식하기도 했고, 이런 때는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 이삼일씩 물만 마시는 금식 기도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선태는 그렇게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고, 다행히 주님께서는 선태에게 강인한 체력을 허락하셔서 아무런 병이나 탈없이 금식 기도라는 고된 훈련에 익숙하게 하셨습니다.

금식은 자기 절제를 위한 훈련인 동시에 욕심과 허영심을 버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기도 했으니까요.

선태는 기숙사에서 금식할 때마다 아꼈던 식권을 달분씩 현찰로 받아 교회에 헌금도 하고, 교통비로 쓰거나 선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다과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절제있는 생활을 통해 선태는 거기서 오는 말할 없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낄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새벽부터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회 활동을 하고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국수 그릇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루 종일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선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제대로 깊은 잠을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교과서를 점자로 만드는 일과 숙제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원대한 희망을 품었기에 이겨낼 있었고, 그때 터득해 놓은 잠을 이기는 비법이 주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회 봉사로 피곤해도 이겨낼 있는 기초 체력이 했습니다.

학교 뒤편으로 10 정도 걸어가면 산마루에 나환자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은 음성 나환자 소년 소녀 70~80명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선태는 우연히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운 그곳의 아이들이 떼를 지어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선태는 교회에서는 오전만 봉사하고, 오후에는 수용소 아이들에게 가서 동화도 들려주고, 찬송가도 가르쳐 주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끔 건빵을 사서 함께 나눠먹기도 하고 여름 성경학교도 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곳의 여고생들 명이 계속 선태에게 애정이 담긴 편지를 보내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몇몇이 어깨동무를 하고 떼를 지어 학교 기숙사까지 찾아와 벤치에 앉아 노래하며선생님 보고 싶어요!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이상 봉사를 계속 하는 서로에게 나눔보다 상처가 크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선태는 서서히 나환자촌 봉사를 정리했습니다. 선태에게는 가야할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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