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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1호]  2018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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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쓰기도 하면서 여유 있게 살아보자
[[제1590호]  2018년 4월  14일]


미국에 살 때에 알던 사람 중에 H라는 여성이 있었다. 30대 초반에 딸 한 명을 데리고 유학생인 남편과 함께 미국에 왔다. 남편은 열심히 공부했고 이 여성은 꽤나 큰 식당에 취직을 했다. 좋은 성품에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 주인의 신망을 얻어 종업원을 통솔하는 지배인의 위치에 올랐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식당에서 그는 매주일 교회에 가는 시간과 밀린 가사를 위해 일요일에 쉬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기 식당처럼 열심히 일을 하였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졌지만 가정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학업을 마친 남편은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였고 영주권도 취득했으며 딸도 대학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성공적인 이민 생활이었다. 딸의 졸업 기념으로 세 가족이 처음으로 며칠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그 곳에서 지난 20년을 회고해보니 잘못한 것은 없지만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 대한 회의가 조금씩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담한 집도 장만했으나 이 집을 가꾸는 것도 남편의 몫이었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함을 느낄 수도 없는 너무나 바쁜 매일의 생활이 계속되었음을 느꼈다. 세 식구가 이런 것에 대한 불평을 하기 전에 이는 당연한 생활이라는 체념 속에서 묵묵히 각자의 일을 열심히 감당함으로 커다란 마찰이 없었음을 다행스럽게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런 형편을 깨닫고 생각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때였다. 마침 LA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지진으로 이 여인이 살던 집도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크게 실망한 것은 그가 평소에 욕심을 내어 본인의 재산목록 1호로 여겨 장만한 크리스털 컵과 상당히 비싼 고급 접시 등이었다. 얼마 전에 큰마음 먹고 상당한 돈을 들여 구입한 이 식기들은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며 때로는 먼지를 털면서 빙그레 미소나 짓던 애장품이었다. 그런데 이 귀중한 물건이 박살나면서 다시는 볼 수도 없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끼던 물건을 치우면서 그리고 부서진 집을 수리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너무나 각박하게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예배 시간에 들었던 설교 말씀도 생각났다. 누가복음 12 16-21절을 인용해 부자의 어리석음에 대해 주신 말씀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에 너무 집착해 남에게 몹쓸 짓도 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식당에 오는 손님 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가정이나 개인적인 교우관계나 취미 등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사업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에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미국을 방문해 만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예쁜 손녀의 할머니가 된 초로의 여인으로 예전에 한 주일에 한 번 예배에 나가던 신자에서 일상생활의 우선순위에서 교회 일이 제일이며 그 다음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 되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딸네 집을 왕래하며 손녀를 돌보는 것도 큰 낙이며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기에 친구들을 만나는 일에도 앞장을 서며 개인적인 취미생활도 열심히 한다. “이젠 쓰지도 않으면서 보기만 하는 비싼 그릇은 안 사요.” 그가 웃으며 한 말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필요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 생활이 몹시도 즐겁단다.

백형설 장로<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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