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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2호]  2018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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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학도병의 희생과 장진호 전투
[[제1599호]  2018년 6월  23일]

1950.6.25. 새벽 4 작전명폭풍으로 북한군이 무력남침을 개시했다. 개전 3 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2개월도 되기 전에 포항을 거쳐 부산으로 진입하려던 북한군 766유격대, 1950.8. 10% 남아있는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학도병이 나섰다. 포항여중에 집결한 71명의 학도병에게 250발의 실탄이 지급됐다. 사단 본부를 사수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썼던 어느 학도병의 편지가 전해온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해야 되나요.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마음이 가라앉을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앞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것인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수의(壽衣)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약간 안정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테니까요. 그럼…….

이는 국군 3사단 소속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인데 그는 1950.8.10.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불과 15세의 나이로 전투에 참전하여 산화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학생은 이렇게 썼다. 홀로 계신 어머님의 손길 스쳐가고 싶다고. 그럴까. 어머니 이름은 명사요 감탄사이기 때문이다. 학도의용군 71명이 총격전과 백병전으로 북한군 766유격대 수백 명을 막아 11시간의 전투. 11시간이야말로 민간인과 주요기관들이 안전하게 피신할 있었던 시간이었다. 3사단과 미군이 반격의 기반을 마련할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학도병들의 나이는 15-18세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6·25 한국전쟁의 다른 부분을 보자.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UN군은 1950 9 28 서울을 수복하고 10 1 38선을 돌파해 10 20일에는 평양까지 수복했다. 1해병사단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그리고 다시 원산에 상륙해 북진의 선봉에 섰다. 북한군은 개마고원 근처 강계로 도주했다. 사기충천한 미군과 한국군은 강계를 목표로 11 24 장진군 유담리에 진입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대공세로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포위됐고 미군 전쟁사에서 진주만 기습 이후 최대 희생자를 장진호 전투를 치렀다. 전투에서 UN군은 1 7,000, 중공군은 4 8,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중 UN 비전투 손실이 7,000 명에 달했는데 대다수가 동상(凍傷)이었다. 미군도 중공군도 절반 이상이 동상 환자였다. 고도 1,000m 장진호 일대는 기온 영하 20, 밤에는 영하 37도까지 내려갔다. 1해병사단은 후퇴 중에도 중공군 7 사단을 격파했고 연합군 10 명과 피란민 10 명을 흥남 철수 작전으로 탈출시켰다.

2017.6.28.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일정으로 해병대 박물관 안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참배했다. 6·25 한국전쟁은 3 1개월 2일간(1950.6.25.-1953.7.27.) 우리 민족끼리 싸운 전쟁이었다. 북한이 먼저 남침을 시작해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밀렸으나 다시 미군과 UN군의 도움으로 압록강까지 진군해 북진통일(남북통일) 거의 이루어 냈으나 돌연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1.4후퇴가 벌어졌고 현재와 같이 38선을 경계로 나라로 분단되었다. 우리는 한국전쟁사의 숨은 이야기를 배워야겠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더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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