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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호]  2018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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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만행(蠻行)<1>
[[제1605호]  2018년 8월  4일]

이른 새벽. 부대는 북쪽으로 이동한다. 1002 공병 야공단이 주야로 도로 보수공사를 덕에 사북부터는 군용도로가 뚫려서 평창까지 량으로 있었다. 겨우 사북에 도착한 부대는 재정비하여 다시 배차를 받아 출발하였다. 대대장의 지프 바로 뒤에 특임대 0.5 트럭 앞좌석에 한지민과 이희영 중위가 나란히 앉았다.

11월도 어느새 훌쩍 가버리고 12월의 시작과 함께 겨울다운 매서운 추위가 이곳 강원도 전방을 휩쓸고 있었다. 히터의 따스함으로 차내는 훈훈하지만 창밖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살을 에는 바람에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금방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것만 같다. 동쪽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밭에 미처 무들이 하얀 서리를 머리에 태양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희영 !

한지민이 나직이, 그러면서 은근한 음성으로 중위를 불렀다.

작전이 종료되면 다시 대전으로 복귀되나요?

아마 그렇게 걸요. 자신도 그걸 원하고 있고.

이희영은 지민을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도 대전으로 같아요. 우리 대전에서 다시 만나면 정말 좋겠는데.

그래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희영은 창밖을 응시하며 쓸쓸히 웃는다.

사내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부드러운 대화를 던지는 것일까. 어젯밤 일들이 부끄러워 억지로 해보는 말일까.

이희영은 한지민의 속내를 아직도 정확히 읽을 수가 없었다. 몹시 가까운 같으면서도 살펴보면 거리에 서서 자신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이니 말이다. 옆에 운전병이 있어 눈치는 보이나 나란히 앉아 가는 상황에선 남자가 여인의 허리를 감는다든지 아니면 손이라도 잡을 만한데 남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전혀 멋대 가리 없다.

꼿꼿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장땡인가. 소심한 성격도 아니면서 이러고 있는 것은 내게 이성적인 관심이 별로 없다는 증거일까.

이희영은 슬며시 불쾌해졌다. 자존심도 점점 상해가고 있었다. 지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라고 저러는가. 갑자기 얄미운 생각이 엄습해 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도로 상태가 극도로 나빠 차량이 많이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지민과 희영의 어깨와 무릎은 자주 접촉이 되어 자동적인 스킨십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때 웬일인지 한지민이 슬며시 희영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여자는 지체 없이 잡힌 자신의 손을 홱하고 뿌리쳤다.

한지민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잠시 일더니 이내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곧이어 한지민이 희영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여자는 남자의 손목을 세차게 밀쳐버린다. 남자는 화가 다시 그의 팔로 여자의 허리를 있게 감싸 안아 자신의 쪽으로 밀착시켰다. 순식간의 일이라 여자의 짧은 신음 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차량 행렬이 잠시 멈췄다. 10분간 휴식이다. 길가 밭에서 용변을 보거나 화랑담배를 맛있게 피워대며 떠들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들은 너무나 질서가 없어 보였다. 전쟁터에서 휴식의 질서는 바로 안전과 경계에 있는 것인데 이들의 해이한 무질서는 도를 넘고 있었다.

그때였다. 후미 쪽에서 갑자기따르륵 탕탕하는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엔 3중대가 있는데 중대장이 통신병을 데리고 개울가에 소변을 보던 중이라 했다. 무장공비 3명이 이들에게 정조준 사격을 다음, 바로 법흥산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한다.

한지민 특임대가 즉각 사고 장소로 달려갔다. 대대장은 재빨리 삼척 본부에 헬기 요청을 긴급 타전했다. 이희영 간호 팀과 오상수의 의무병들이 출혈을 막는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사람 모두 출혈이 심했다. 대대장은 이들 이름을 부르며 정신을 놓지 말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런 어이없고 억울한 일이 발생한 원인은 전쟁터에서 가장 기초적인 원칙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의 사주경계는 기본이다. 기본을 소홀히 죽음이 따른다는 교훈을 이들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헬기가 도착해서 후송할 즈음 사람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놈들의 사격술은 놀라웠다. 가슴과 머리 부분을 정확히 관통했다.

전쟁터에서 작전 실패는 용서되나, 경계 실패는 절대 용서 된다 교훈이 있지만 사고 후엔 이미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다름없었 . 한바탕 난리는 끝났다.

 

채수정

<채학철 장로>

•() 한생명살리기운동 본부     

  본부장·상임이사

전농주사랑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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