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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입법보다 더 중요한 국회의 일은 없다 ②
[[제1617호]  2018년 11월  3일]


법을 부당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입법과정의 공정성이요 둘째는 입법 그 자체가 형평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전자는 절차적 공정성을 중요시 한다는 의미인데 민주주의는 사실상 절차적 공정성에 많은 무게를 둔 가치이다. 흔히 우리는 국회가 입법을 할 때에 3독회를 명실공이 실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사실상 1독회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입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 자신이 자기가 제안한 법안이 통과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원래 3독회라는 과정은 비단 국회의원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 법이 통과되면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슨 의무와 혜택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계기요, 동시에 국민은 이 기회에 비록 당장은 직접 관계는 없으나 언젠가는 그 법에 대한 직접적 이해관계가 생길 때에는 즉시 수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예비적 지식을 제공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공정성의 결과는 그 입법에 관련된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그 입법과정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입법의 공평성(the equilibrium)이다. 이것은 그 법의 내용이 형평성을 잃지 않고 서로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경쟁하는 가치 간에 어려운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가까운 예로 절도라는 범죄가 매우 나쁜 행위이긴 하나 그렇다고 절도범에게 사형을 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범죄행위와 그 처벌간의 형평성을 잃은 법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형평성이라는 개념은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어서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적어도 어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는 그 형평성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민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 생긴 곳이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이다. 그들을 국민이 직접 뽑은 까닭은 우리들의 의사 즉, 우리들의 소망, 요구, 가치 등을 입법과정에 잘 반영해 달라는 뜻에서다. 이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다. 그들의 말, 그들의 투표, 그들의 질의,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국민의 의사가 입법과정에 공정하고 형평에 맞게 반영하라는 헌법의 요구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입법과정에 공정하지 못하거나 공평하지 못한 요소를 찾아내서 없애고 더 공정하고 더 공평한 요소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발휘하라는 민주주의적 요구가 민주국가의 헌법정신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오늘날 국회에서의 활동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뜻과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국회의원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입법보다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정당간의 소모적 정쟁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본질적 문제가 아닌 극히 지엽적 문제로 증인을 말 할 것도 상대 당 동료의원에게까지 모욕과 폭언을 일삼는 의원들을 볼 때에 과연 이런 사람들이 과연 공정하고 형평의 마음을 가지고 입법과정에 임할 수 있겠는지 의심이 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는 엄연히 3권 분립의 헌법 하에서 유규권자로부터 직접 선출된 국회의원이 그 신성한 임무를 저버리고 자신들이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는 것을 영광인양 착각하는 의원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들을 뽑은 국민들의 의사를 입법과정에 반영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 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정권노름(쟁취나 수호)에만 몰두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로서 마땅히 규탄 받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문자 그대로 우리 국민들의 심부름꾼인데 그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예우하는 까닭은 그들이 스스로 높고 잘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의 위상을 존중하기 위해서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무리는 국민들이 미리 잘 파악해놨다가 다음선거에서 심판해야 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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