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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한 놈만 패라”가 정책인가? ②
[[제1619호]  2018년 11월  17일]


불행히도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 준비 없이 맞이한 해방과 선거, 정부 수립과 6.25전쟁, 혁명과 정권교체 등 말로 다 할 수 없이 급속도로 진행된 변화 속에서 정당의 발전이나 정책경쟁이란 저 먼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여겨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경제뿐만 아니라 거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한 증표가 수출은 아직도 잘 되어 가는데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 이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지난날의 전통, 친분, 지역감정, 혹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이념의 굴레에서 단호히 벗어나서 나의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에 근접한 정당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정권을 맡은 정당도 국민의 튼튼한 뒷받침이 따를 것이고 원내의 세력 분포도 국민의 선택과 엇비슷하게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이른바 최저임금입법이 오히려 재벌의 저항보다는 자영업자나 농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또 근로시간의 단축은 왜 근로자의 환영을 못 받고 있는가? 이제는 사회적 약자인 그들 간에도 더 구체적 이슈에 가서는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한다는 뜻이다. 만약에 다음 선거에서도 이처럼 사회적 약자로 자처하는 자영업자, 농민, 근로자들 간의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의 매듭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하고 막연한 보수니 진보니 하는 구도로 정책을 형성한다면 투표는 투표대로 했으나 원내구성은 유권자의 민의와는 무관한 구도로 갈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국회의 입법에 불만을 품은 장외 세력 간의 빈번한 대결과 충돌도 목도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좀 더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당 간의 경쟁이 절대로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도달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따라서 정당의 존치 목적은 하나도 정책, 둘도 정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을 알고 추진시킬 수 있는 인재의 등용이 요구된다. 언제까지 자신들은 책도 안 읽고 내용도 잘 모르면서 지인이나 외부요역에만 의존해서 써 준 질문을 읽어 내려가는 국회의원들을 우리의 머슴이 아닌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가 말이다. 지금 터져 나온 사립유치원 재정 부정사건만 해도 그렇다. 여당의 박 모 의원에 의한 폭로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는지 묻고 싶다. 공부하기가 그렇게 싫다면 왜 우리 의원들은 운전수도 있고 보좌진도 여러 명 두고 있으면서 현장답습이라도 좀 자주 하면 어떤가? 묻고 싶다. 정치는 현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 국회의원들은 왜 모르는지.

사실 우리 재정의 3분이 1일 이상이 공기업이나 민간기구에 의해서 쓰여 지고 있다.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것들의 더 효율적이고 투명한 사용에 관한 제도를 못 만드는가? 우리 국민이 어렵게 벌어서 세금으로 낸 돈을 사용하는 모든 기관은 마땅히 국가의 모든 법규와 회계원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국정감사를 통한 국회의원의 몫임을 왜 모르는가.

그간 우리의 국회를 보면 정책형성도 정책감사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 년에 고작 3주도 안 되는 국정 감사 기간 동안에 40여 개 정부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수백 개에 달하는 공기업과 산하기관의 업무를 다 감사해야 할 판인데, 다 할 수도 없고 그럴 능력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그 제한된 기간 동안 대부분은 단 한마디의 질문도 받아보지 못한 채 되돌아 간 증인이 허다하며 간혹 질문을 받는 증인 중에서도 답변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가 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질문만 한 채 증인의 답변은 듣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선진국가로 가려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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