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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아, 조지훈 선생님
[[제1643호]  2019년 5월  25일]

지난517일은 지훈(芝薰조동탁(趙東卓: 1920-1968) 선생께서 타계하신지51주년이 되는 날이다. 48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그토록 굵은 삶을 살다 가신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 글을 쓴다. 1960년대 초반조지훈 선생님께 국한문학이라는 과목을 배웠다지금 기억하기로는 이 과목은 국문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모든 문과대학 학생들이 즐겨 청강했던 과목이었던 것 같다영문학이 전공이었지만 한자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과목은 금과옥조와도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생께서는 그때 이미 지병으로 인하여 강의 시간에 숨이 차서 말씀하시기가 어려워1-2분씩 간헐적으로 강의가 멈춰지기도 하였고 이따금 강의실을 비우시는 때도 있었다선생님께서 부과하는 시험은 대개 한시의 전문(全文)을 외워 쓰는 것이었으므로 그때 열심히 암기했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황조가(黃鳥歌), 서동요(薯童謠), 정읍사(井邑詞), 구지가(龜旨歌등의 내용은55년의 성상이 흐른 지금도 친근하게 입가를 맴돌고 있다

혜산(兮山박두진(朴斗鎭: 1916-1998) 선생목월(木月박영종(朴泳鍾: 1916-1978) 선생지훈(芝薰조동탁 선생 등이 세 분이1946년 공동으로 발표한 시집청록집(靑鹿集)'으로 인하여 이들을 청록파시인(靑鹿派詩人)으로 부른다조지훈 선생께서는 적지 않은 숫자의 시를 남기셨지만조지훈의 시”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승무(僧舞)'이다지훈의 대표시요한국시의 수작(秀作)으로 일컬어지는 이 시는18행의 그리 길지 않은 시로서 지훈 선생께서 이 시 한 편을 완성하는데 근1년의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아직 떠꺼머리총각이던 열아홉 살(1938) 지훈은 수원 용주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그곳에서 어떤 여승(실제로는 남자스님)의 춤을 감상하게 된다그 승무를 감상한 그날 밤지훈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였다. “나는 온 정신이 승무 속에 용입(溶入)되었다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안고 서울에 온 나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했다”(조지훈 저의 原理' 1956). 

그는 스무 살이 되던 첫 여름에서야 비로소 붓을 들었으나 시는 여전히 진도를 나가지 못하였다그 무렵예술[미술]전람회'에 갔다가 이당(以堂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의승무도'를 발견하고 그 앞에 서서 두 시간 동안이나 깊이 감상하고 묵상한 보람으로 시에 대한 대강의 내용을 스케치할 수 있었다고 그가 훗날 술회하였다그해10월에그러니까 이 시를 구상한지11개월 만에집필을 시작한지7개월 만에승무'가 완성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게 된다지훈 같이 시상(詩想)이 탁월한 분이 대하소설이라면 모를까 겨우18행에 불과한 시 한 편을 쓰는데 만1년의 오랜 시간이 걸린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추측컨대변치 않는 진리를 착안하고 그 내용을 묘사하는 과정이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선생께서 서거하신 후2년 정도가 지난1970년 어느 날이었다우리에게문장론'을 강의하셨던 정한숙(鄭漢淑: 1922-1997) 선생을 뵐 기회가 있었다조지훈 선생께서 자리를 비우신 이후의 문과대학의 분위기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지훈이 차지했던 공간이 워낙 커서~” 하시면서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께서 가신지51주년이 되는 금년에도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 일원과 조지훈 문학관에서는 지난54~5일 양일간에 걸쳐 《조지훈 예술제》가 열렸다고 한다. 4일에는 전국백일장과 학생들의 사생대회가 열렸고5일에는 조지훈 시낭송대회와 관객들의 퍼포먼스로 행사를 마무리하며 그 어른의 뜻을 기렸다고 전한다인간의 번뇌를 종교로 승화시키려 애쓰며 살다 가신 그분 앞에서 다시 한 번 흩어진 옷매무새를 정중히 가다듬는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

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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