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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4호]  2019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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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언어의 폭력과 언론의 책임 ①
[[제1644호]  2019년 6월  1일]

지난 몇 달 동안 날이 갈수록 우리사회 특히, 정치권의 언어가 정상국가의 수준을 훨씬 넘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음에 우리 국민들은 몹시 걱정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모당의 원내대표가 ‘0이라는 용어를 그 단어의 어원이나 뜻도 잘 모르면서 사용했다고 하는가 하면 한 시민단체의 간부는 현직에 있는 모 검사장 집 앞에서 차량넘버를 다 알고 있다는 등 여러 차례 그를 위협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에는 모 정당의 국회의원 여러 사람이 5.18을 폄훼한 혐의로 국회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아직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그간 우리 사회의 목탁이라고 자처하는 언론이 이처럼 혼탁해진 정치적 언어와 행태를 모질게 꾸짖고 혼 줄을 내줬어야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많은 언론은 이러한 언어의 폭력을 언론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눈 감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이것은 2017년 미국 버지니아주 수도인 샤롯스빌(Chalottesville, Va.)에서 발생한 인종차별적 폭동에 대해서 미국의 언론이 취한 단호한 태도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표현을 폭 넓게 허용하는 국민이지만 폭력적 의사표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 상대방이 아무리 싫거나 좋아도 폭력은 그 언어나 행동에서 결코 그 사회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서로 다른 수 백 개의 언어와 인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우리 같은 직업 언론인이 아닌 사람도 오늘날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소식 중에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가짜뉴스라고 판단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가장 최근에는 모 유력 일간지가 하지도 않은 인터뷰를 기사로 만들어 모 여론조사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으니 어찌 오늘 우리의 언론계가 과거 일제의 강점기에도 굽히지 않고 간직했던 빛나는 신문고의 전통에 먹칠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 할 수 있겠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이 언어의 폭력화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룬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우리 언론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말과 행동에 이처럼 미온적으로 나오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겉으로는 언론의 중립성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속내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에 우리 언론이 그처럼 중립성을 잘 지켰더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엇 때문에 집권자들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노력을 그렇게 끈질기게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위와 같은 사건을 언론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 우리국민들의 정보와 지식의 공급원이 주로 언론 매체에 달려있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보도는 반드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야 하고 그것의 가치판단은 사설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언론에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주문인가? 그것은 언론이란 특정정당이나 이념의 도구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날 일제의 암울한 세월 속에서도 우리 언론은 그 본래의 사명을 잊은 적이 없이 충실했음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언론이 좀 더 성실하고 분명하게 그 본래의 사명에 충실해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 보통사람들은 매일 매일 급속히 변하는 세상일들을 주로 언론을 통해서 알고 판단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단호한 언론 없이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창현(전 방송위원장, 현대교회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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