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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7호]  2020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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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모는 인생의 멘토다 ③
[[제1662호]  2019년 10월  26일]

그날도 아버지는 동료들과 반주를 하셨는지 조금 취한 채 귀가하셨다. 탄광 일이라는 게 워낙 험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보니 탄광촌 저녁 풍경은 날마다 취한 표정이었고, 그 풍경 속에 아버지도 끼어계실 때가 많았다. 그날따라 심기가 불편하셨는지, 어머니는 취기가 오른 얼굴로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달그락거리며 들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향해 당신의 레퍼토리를 읊어대셨다.

누군 새끼를 뒷바라지에 집안일에 이렇게 안달복달하고 사는데 누군 세상 좋게 술타령이네.”

동료들이랑 월급날이라 막걸리 한 잔 받았네.”

그러니까. 가져다주는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그새 못 참고…….”

그러자 아버지는 뒷주머니에서 부시럭부시럭하며 월급을 내미셨다. 월급은 늘 부족하다. 최상위 부자들을 빼면 모든 이들이 월급이 넉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늘 부족하셨던 어머니는 또 신세 한탄이셨다. 그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아버지의 옷을 받아 들었다. 아버지는 금세 정신없이 코를 골며 잠에 빠지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아버지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으려는데 윗주머니에서 뭔가 부시럭하는 소리가 났다.

뭐자? 혹시…… 이거 월급봉투 아닌가? 한번 볼까?’

순간적인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봉투를 슬쩍 꺼냈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누런 봉투에 수기로 뭔가 잔뜩 적혀 있고 웬 붉은 도장이 촘촘히 찍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 백 몇 십 원까지 꼼꼼히 적혀있는 글씨를 보니 한눈에 봐도 월급 가불 표시였다. 12월 월급은 1월 월급을 미리 가불해서 가져가고, 다음 달 월급을 받으면 채워 넣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그 속에 적혀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가 겪었을 마음고생과 가장으로서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제야 붉은색 도장과 함께 각인이 되었다.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아버지의 얼굴에 피어난 주름 한 골 한 골에 어떤 심정이 담겨 있을지 헤아려보았다.

말할 수 없이 죄송함이 밀려왔다. 나는 월급봉투를 아버지 속주머니에 다시 넣지 않았다. 가능한 다른 가족들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봉투가 살짝 보이게끔 꺼내놓았다. 그런 행동 가운데에는 어머니도 이 사실을 아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들 모실 기회가 많아지면서 어머니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그때 일이 생각나 여쭸던 기억이 있다.

늬들 아버지 고생 많이 하셨다. 그 쥐꼬리만 한 월급 받아서 니들 다 공부시키고 먹이고 입히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냐. 늬 아버지 월급봉투는 온통 뻘겋더라.”

그 말씀에 우리 모두 숙연해졌다. 가장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일부러 더 강단 있게 살림을 이끄신 어머니의 마음, 끝까지 가정과 자녀를 책임지며 당신의 자리를 지키셨던 아버지의 삶은 그 자체가 내 인생의 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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