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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 프란체스코 교황이 주는 교훈
[[제1576호]  2017년 12월  23일]


프란체스코 교황이 2014 8 14~18일까지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종교와 인종의 장벽을 넘어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가르치는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는 지도자로 2000년 기독교 가톨릭 역사에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역대 교황 265명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빈자(貧者)들의 성인(聖人)인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가 교황이 되기 전에는 베르고글리오 신부로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빈자와 약자의 편에서 지내면서 한때 남미에서 유행했던 해방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교황이 되면서 이름을 프란체스코로 바꾸었으며, 부패의 온상이던 바티칸은행을 개혁하고 마피아를 파문했다.

그는 교황 관저가 아니라 직원들이 묵는성녀마르다의 집”에 기거하였으며, 교황이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생일에 성 베드로 성당 주변의 노숙자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함께 하였다.

() 프란체스코(Francesco 1182-1228)는 이탈리아 아시시 다미아노교회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 향락을 추구하다가 그가 20세에 다미아노교회에서 회심하여 평생을 청빈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길가에서 한센병 환자에게 입맞춤을 하고, 자기 집안에 귀한 물건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 아버지가 아들 프란체스코의 상속권을 박탈해 달라는 청구를 아시시 시청에 제소하였다. 시청 정문 앞에서 프란체스코가 팬티를 포함한 모든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를 떠나 하늘의 아버지께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는 무소유로 사랑을 몸으로 구현하여 빈자들의 친구로 살았다. 중세기에 교회가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중심이 붕괴하여 이를 일으키기 위하여 쇄신을 하였으며 평생 예수의 삶을 살다가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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