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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죽노라
[[제1632호]  2019년 3월  2일]

죽어야 삽니다겨울이 되면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앙상한 가지만 남기게 됩니다.그러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잎을 버리는 것입니다나무가 잎을 버리고 나무가 몸의 일부를 버리고 죽이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찬바람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 영양분 섭취가 어려운 겨울 동안 최소의 영양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무가 잎을 버리는 것입니다새봄에 새로운 새싹을 틔우기 위해 새로운 꽃을 피우고 새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 지금 자기 몸의 일부를 버리고 죽이는 것입니다나무가 살기 위해 죽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죽어야 합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한 가정 늘 웃음이 넘치는 가정에 들어가 보면 가정을 위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런데 서로 죽지 못하고 내가내가하면서 자기주장만 하면 가정은 불화가 계속되고 결국 가정이 깨어지고 맙니다죽어야 부부 관계가 살고 가정이 살고 자녀들이 삽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죽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속에서 내가내가하면서 내 말만 하고 내 뜻만 앞세우고 내 감정 내 기분만 앞세우면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나고 관계가 깨어집니다그러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내 말 내 뜻 내 의지를 죽이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따르고 친구들이 따르고 관계가 살아납니다내가 죽어야 사람을 얻을 수 있고 인간관계를 살릴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죽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내가 죽어야 살지 않습니까내가 죽어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회사가 삽니다직장에서 내 사적인 감정이 살고 내 기분대로 살고 내가 성질부리고 싶다고 성질부리고 귀찮다고 회사에 나가지 않고 하기 싫다고 나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내가 죽으면 내가 살고 가족이 살고 회사가 살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내가 죽어야 합니다.

교회도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삽니다교회에서 내가내가하면서 내 주장을 하고 내 소리를 내고 내 이론과 내 상식과 내 경험이 살아서 역사하면 교회가 죽게 되고 내가 죽고 내 가정이 죽습니다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죽으면 교회도 살고 나도 살고 가정도 삽니다.

신앙생활이 이와 같습니다우리가 옛사람을 버리고 주님만 모시고 주님만 사랑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세례는 나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세례는 나의 옛사람 예수님을 믿기 전의 나의 습관의 나의 죄 나의 교만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사람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예배는 드리고 있지만 옛날에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하고 주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교회에 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교회 문만 나서고 세상에 가면 세상을 사랑하고 옛날에 좋아하던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이것이 바로 영적인 간음입니다이렇게 하는 한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매일 죽어야 합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을 했는데 바울은 사명을 위해서 날마다 죽었습니다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위하여서 자기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사도 바울은 사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던지고 죽였습니다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 무엇입니까주님을 위해 무엇을 버렸습니까무엇을 죽이고 살아갑니까오늘의 시대는 제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죽어야 영웅이 됩니다특별히 화해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미국의 노예 해방을 위해서 링컨이 죽었고 링컨이 제물이 되었습니다인종차별이 해결되기 위해서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죽었습니다인도가 무슬림과 힌두교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간디가 죽었습니다간디가 쥐가 고양이를 잡는 방법을 이야기 했습니다여러분 쥐가 고양이를 어떻게 잡습니까방법이 없습니다그러나 쥐가 쥐약을 잔뜩 먹고 고양이 앞에 나가서 춤을 추면 됩니다쥐가 쥐약을 잔뜩 먹고 고양이 앞에 가서 춤을 추면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습니다그러면 쥐약을 먹는 쥐를 먹은 고양이가 죽는 것입니다쥐가 죽어야 고양이를 죽인다는 것이죠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인들의 양심을 깨우기 위해 스스로 죽었습니다간디가 죽음으로써 인도의 지성 인도의 양심이 깨어났고 살아났습니다그가 죽음으로 민주주의가 싹이 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오늘도 자기를 죽이는 지도자자기를 죽이는 가장자기를 죽이는 성도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임보순 목사

<경안노회 안동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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