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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육자로서 대광과 더불어 함께한 이창로 장로 (5)
[[제1551호]  2017년 6월  3일]


유학의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 성실한 삶

1936 1 8일 나는 신부 최성실(崔聖實) 양과 평안북도 의주군 고진면 서제동(平安北道 義州郡 古津面 西齊洞)에 있는 신부집에서 다니는 남산교회(南山敎會)에서 김석항(金碩抗) 목사 주례 하에 결혼식을 올렸다.

내 나이 23세 신부 나이 22세 때였다. 혼담이 오고 간 것은 그 전 해 가을경부터라고 기억한다. 양쪽 부모 간의 중매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혼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로 반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나 자신 신부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녀의 가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향 학령에서 신의주로 이주한 후 부친은 생활방편을 얻기 위해 이것저것을 시도해보다 시내 진사동(眞砂洞)에서 미곡 정미상을 경영하던 익륭상회(益隆商會)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볏겨를 받아 총판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그 당시 그 볏겨는 중류 이하 가정에서 연료로 사용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익륭상회는 고모할머니의 아들이고 후에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안세희(安世熙) 장로의 부친되시는 안병련(安秉連) 씨와 김순극(金順極), 그리고 신부의 부친 최용흠(崔用欽) 씨가 합자공동경영하고 있어서 서로가 가정과 신랑, 신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혼담은 무리 없이 진행되어 형식상의 맞선을 보고 나서 약혼을 했고 평양과 서제동 사이를 오가는 편지도 몇 번 주고받은 것을 기억한다. 신부는 주로 일본 여자가 다니던 신의주 공립고등여학교(新義州 公立高等女學校)를 우등으로 졸업을 하고 집에서 가사를 돕고 있던 규수였다.

결혼식은 학교가 방학하는 기간을 봐서 춥고 눈이 쌓인 겨울철에 강행했다. 그때 별로 흔치 않던 검은 승용차를 세를 내어 타고 식장까지 갔고, 들러리로는 교회 친구였던 서성관(徐成寬) 군과 강영환(姜永煥) 군이 수고해 주었다. 신혼여행은 장인어른이 신병으로 인하여 황해도 해주(黃海道 海州) 요양원에 입원하고 있었기에 문병 겸 2일간의 여정으로 기차여행으로 대신하고, 3-4일간 잔치 기분으로 들떠 있는 농촌 처가에 머물며 장모의 따뜻한 사랑과 처남 인실(仁實), 처제 영실(英實), 순실(順實) 그리고 몇몇 친척 되시는 분 등에 둘러싸여 즐거운 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나의 첫 교직 생활은 3년간이었는데 그 첫해는 평양에서 하숙을 하면서 독신생활로 지냈고, 둘째 해에는 평양 시내 경상리(慶上里)에 두 칸 집 셋방을 얻어 달콤한 신혼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항상 현상에 만족치 않고 고등교육을 받아 좀 더 향상하는 생활을 가져야 하겠다는 소망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바쁘고 고된 교직 초년 생활에서도 틈틈히 그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이 아내도 나의 생각에 동의하였고 장인도 좋게 여기어서 유학하는 동안 후고의 염려 없도록 해 주실 말씀이어서 다시 한 번 학창 생활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평양에서 2년 교직 생활을 끝낼 무렵 37 3월 말 돌연히 평안북도로 전출하여, 경의선 운전역전(京義線 雲田驛前)에 있던 운전(雲田) 보통학교에서 근무하라는 발령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결혼을 한 후 가정을 부모가 있는, 그리고 처가에서도 가까운 신의주에서 교직 생활을 하는 것이 편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보통학교 5,6학년을 담임하셨던 차응운 선생님이 평안북도 시학으로 계셨으므로 그에게 신의주에 있는 학교로 전근시켜 달라는 부탁을 해 두었던 것인데 신의주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 일단 운전으로 와 있다가 다음 기회에 신의주로 전근케 하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의주로 못가고 운전이란 곳에 도중하차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것은 운전이란 곳이 조용한 전원도시여서 학교도 학년 당 한 학급제의 조그마한 가정적인 분위기의 학교여서 유학을 준비하기에는 알맞은 곳이었다.

마끼()라는 일본인 교장도 이해가 많았고 나에게는 4학년을 맡겨주어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운전에 있는 동안에 우리는 첫 딸을 보게 되어 가정적으로도 단란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을 정순(貞順)이라고 지었는데 첫 아이가 되니 다른 아이보다 내 품에 많이 안기어 사랑을 받고 자라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운전에 있는 동안 운전교회를 위해 많이 봉사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설립된 지 얼마 안된 시골교회라서 교인들도 얼마 없었고 교회를 지도할 만한 인재도 별로 없었다. 그리하여 주일학교와 성가대와 청년회 등을 다 맡아 일하면서 그런대로 얼마 동안 보람있는 교회 봉사생활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해 12월에 신의주 제2보통학교로 전근발령을 받았다. 역시 도 시학이던 차 선생님의 고려로 된 일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만 나의 유학 계획을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데서 일어난 일이어서 후에 죄송한 말씀을 드리면서 사과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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