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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육자로서 대광과 더불어 함께한 이창로 장로 (6)
[[제1552호]  2017년 6월  10일]


오이다 고등상업학교(大分高等商業學校)

3년간의 국민학교 교사로서의 제1차 교직 생활을 끝내고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다시 학창 생활로 뛰어들게 된 것은 1938년 봄이었다. 이때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북지로 진출하면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미명을 내걸고 한참 침략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 오랜 동안 아시아의 국가들이 예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한 시대적 대세를 내다보면서 적어도 전문학교 정도의 고등교육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유학의 길

상업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상과계통인 고등상업학교를 택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라고 생각하여 일본 규슈지방에 있는 오이다고상(大分高商)과 중부지방에 있는 다가오가 고상(高岡) 두 곳을 택하여 입학시험을 보기로 하였다. 나는 둘 중에 좀 더 역사가 있고 시설과 교수진이 좋다고 알려진 오이다를 택하기로 했다. 가정을 가지고 아이까지 있는 처지에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공부하기란 좀처럼 어려울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나 자신이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웠던 일은 아내가 이를 이해해 주고, 조금도 어려운 기색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결혼한 지 2년밖에 안되어서 남편과 떨어져서 시집과 친정집으로 왔다갔다 지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상 학창 시절 3년간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시기였다. 나의 인격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던 기간이었다. 그 해에 나와 같이 입학한 한국인은 박인정(朴寅廷), 정낙영(鄭洛永), 황수인(黃壽仁) 3인이 있었다. 박 군은 후일 내가 평안중학교 교사로 있을 적에 남신의주 풍하동에 있었던 우리 집에 찾아와 며칠간 지내다가 내가 나의 옆집에 있던 미모의 처녀를 소개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오늘까지 자녀들을 두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의 생애에 처음이나 마지막인 중매를 서 본 경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고상에서 공부한 과목은 국어(일본어), 윤리, 역사, 외국어(영어, 중국어) 등 교양과목과, 경제원론, 재정학, 금융론, 보험론, 교통론, 상업개론, 부기, 회계 그리고 체육과 교련 등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오이다고상의 교장으로는 이기마루(石丸優三) 선생이었는데 외교관 출신으로 불란서어에 능통하고 그의 생활에서 자유성이 넘쳐 흐르고 있어 전시체제의 일본에서는 좀 보기 드문 분이어서 이채로웠다. 그 외 교수들도 내가 상업학교나 일 년간의 사범강습을 받던 사범학교 교수들과는 달라 각기 전공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고,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도 식민지 조선에 나와 있던 일본인들과는 달랐다. 영어회화를 담당하였던 영국인 교수와 미국인 교수 두 분과도 접촉할 기회를 가져 외국에 대한 이해를 갖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이다 학창 시절에 교수 중에 가장 친분이 있게 된 분은 상업영어를 담당했던 기다자와(北澤佐雄) 교수였다. 그는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분으로서 세계정세에 밝았으며 특히 미국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는 분이었다. 특히 그는 기독 신자일 뿐 아니라 오이다 일본기독교회의 장로로서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해 주셨다. 때때로 주말이 되면 나를 자택으로 초청해 저녁을 같이 하도록 마음을 써주어서 학창 생활에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주일이면 오이다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주일 모이는 교인 수는 백명을 넘지 못했다. 이 교회뿐 아니라 일본에 있는 기독교회는 일반적으로 부흥하지 못했다. 역시 일본 고유의 신사(神社)와 흥왕한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탓으로 본다. 일본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 교회 담임 미야마쯔(宮松) 목사는 동경 일본신학교 출신으로서 조용하게 교리적인 설교를 하는 지성적인 분이었다. 한국목사와 같이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힘쓰는 면이 없는 것이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미 교인이 되어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의 신앙은 질적으로 높이 평가될 만하였다. 그들의 예의바른 태도나 신앙적 생활모습은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하고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이 지역에 미국 선교사로 와있던 카이파타는 좀 나이 많으시고 친절하게 지도해 주시던 분이어서 금요일 저녁마다 영어성경 시간을 자택에서 가졌다.

 

학창시절의 유익

오이다 학창 시절에 나에게 큰 유익이었던 것은 독서할 시간을 많이 가졌다는 사실이다. 학교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기도 하고 시내 서점을 드나들면서 책을 구독하기도 하였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학과에 관계되는 책이었는데 막스 웨버의기독교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 논문을 학교 교지에 발표한 바도 있다. 교양도서 중 동경제국대학 가와이(河合榮次郞) 교수의 학생총서를 통해 인격주의를 위시해 사회개혁 등에 관한 지식을 얻으며 감명을 받기도 하였다. 종교 분야에서는 이미 타계한 유명한 무교회주의자 우찌므라(內村鑑三) 선생의 서적에 의해 기독교의 진수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그 선생의 로마서 연구와 구안록, 감상록 등은 나의 기독교 신앙에 확고한 기초를 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의 저서 중에서 발췌해서 편집한 일일 일생(一生)이란 책은 매일 한 장씩 읽어가며 성경 다음으로 애독하는 책으로 되어 있다.

오이다 고상에서의 나의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다. 1,2,3학년을 통하여 우등생이어서 2학년과 3학년에서는 장학금을 받아 수업료는 면제 받았다. 하숙은 학교 근처 민가에서 하였는데 3년간에 두 번 하숙집을 옮겨 지냈다. 민가에 하숙하면서 느낀 것은 대체로 일본 사람들이 청결과 정돈을 잘하며 친절하고 예의바름과 정직성 등을 보아 그들의 국민성이 우수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민족이 따라 잡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3년간 나의 하숙비와 잡비는 장인 어른이 보내 주셨는데 오늘까지 빚진 심정으로 감사하고 있다. 여름방학이면 고향 신의주로 돌아가 부모가 계신 집과 서제동 처갓집을 오가면서 가족과 같이 얼마동안 반갑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을 오늘에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오이다고상을 졸업하자 학교의 추천을 받아 일본 고주파 중공업회사에 준사원으로 채용되어 성진공장(城津工場)에 근무발령을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당시 일본 국책회사로서 무기 등을 제조하는 특수강을 생산하고 있는 회사로서 조선사람으로 입사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봉급도 당시 조선에 나와 있던 일본인에게 주던 가봉을 나에게도 차별없이 지급해주는 특별한 대우였다. 함경북도 성진에 넓게 자리잡은 공장부지와 시설규모도 엄청나게 큰 국제적인 규모였고 공장 내의 편의시설과 복지시설 등도 잘 되어 있어 한국 사람에게는 별천지와 같이 생각되어서 나를 보는 사람 특히 우리가 출석하던 성진장로교회 교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시체제 하에서 무기생산을 위한 특수강을 제조하는 면에서 기독교 신앙생활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생각케 하는 면이 있었을 뿐 아니라 교회 생활과 교직 생활 속에서 자라온 자에게는 이방인적인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공장 현장의 매연과 소음은 나의 건강에도 지장이 많을 것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과 같은 곳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직업윤리로 보나, 나의 신앙생활로 보나, 나의 일신의 건강상으로 보나, 이 직업과 이 공장 분위기는 나에게는 적당치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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