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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99)
[[제1561호]  2017년 8월  12일]

목회자,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항해자

 2. 아내 설귀연(3)

시편 128:3 보면 안방에 있는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것처럼 정류는 아내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복으로 생각하여 아내를 존중하고 아꼈다. 정류의 아내 설귀연도 정류를 남편으로 존중하고 신뢰하여 남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아내를 가진 자로서 정류는 안정되고 행복한 일생을 살았던 같다. 가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가족이 어떻게 있는 방편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아내에게 맡기고 유학을 떠나고자 하는 남편을 미국으로 보내는 용기를 가졌던 것을 보면 정류의 아내는 남편을 신뢰했던 같다.

정류는 자신의 자서전인 『등대가 있는 외딴 섬』에서 자녀들에 대해서는구약성서 주해 () 마지막 ()자녀들이란 제목으로 4쪽에 걸쳐 장남문희, 차남성희, 삼남경희그리고 막내딸신희 대하여 언급했다.

그런데, 장남 이문희와 차남 이성희는 필자가 직접 인터뷰하거나, 또는 당사자의 글을 통해 지식을 습득할 있어 그들에 대하여 글을 썼지만, 삼남 이경희와 막내딸 이신희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아직까지는 글을 동기를 찾지를 못했다. 삼남 이경희는 아주 잠깐 얼굴을 보긴 했지만, 대화할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지 못했고 정류의 막내딸 이신희는 벌써 40 보다 이전에 잠깐 대면한 적이 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필자에게 사람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류의 자서전에 의존하여 글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객관적인 자료나 지식이 없어 글을 쓰기도 쉽지 않고, 필자가 그들에 대한 지식도 거의 가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정류가 그들에 대하여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은 의미가 없어 여기서는 쓰지 않을 생각이다.

정류의 가족에게 그들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과 그들 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을 메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없어 쓰기를 포기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그들에 대한 지식을 정류의 자서전 『등대가 있는 외딴 섬』에서 찾을 있을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정류의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정류의 자서전을 참고하면 것이다.

천하의 정류도 아버지란 자리에서는 세상의 다른 아버지의 범주에 있어 자녀들에 대한 애달픈 마음, 사랑하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 등을 숨기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사실이 정류를 더욱 책임있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를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류는 아내에 대하여 자신의 자서전에서 언급을 했지만, 자녀들에 대한 언급처럼 장절(章節)이란 구분된 부분을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 아내를 언급한다. 이러한 정류의 아내에 대한 서술로 인하여 필자는 그동안 필요한 경우에 정류가 아내를 묘사한 곳에서 정류의 아내에 대하여 충분히 서술하였기에 이곳에서는 재차 쓰지 않을 것이다.

 

V. 현장 목회자

()에서는 현장 목회자로서의 정류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정류는 신학을 공부한 이후부터 목회 현장과 관련된 삶을 살았다. 정류의 차남 이성희는 정류가 교회 목회보다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역할을 의미 있게 생각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류는 많은 주석을 집필하고 설교집을 저술하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자의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회자였다는 사실은 불변할 것이다. 그는 목회 현장을 떠나 신학교에서 전임 교수로서의 삶을 살고자 생각하고 목회 현장을 떠날 것을 시도한 적이 있고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예장 총회의 분열이 저에게 심각한 심적 타격을 주었고, 그때 대구의 오랜 친구들 다수가 저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교단에 소속하게 되어 저는 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일교회에 사표를 내기도 전에 당회원들이 미리 알고 만류에 나서 결국 저의 장신대 전임 강사 건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정류는 평생을 목회 현장을 지킨 사람이므로 그를 목회자로 평가하는 일은 어색하지 않다. 그는 오래 신학교 교수, 교장, 이사장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생으로 기억하고 불러주는 이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목회자로 회상한다. 점에서 정류는 학자이기도 했지만, 그는 목회자로서 일생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먼저 평가할 있을 것이다.

정류 당대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목회자로서만 일생을 살았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의 시대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정류는 가지 일을 병행하는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으로 스스로도 생각했고, 정류의 가족도 하나같이 정류가 약했고, 아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통 사람이면 자신이 육체적으로 약하다고 생각되면 일을 줄여간다. 그런데 정류는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루에도 올라오기 힘들어 정도로 병약했지만, 목회자의 삶도 가르치는 자의 삶도 포기하지 않았고 가지를 유지했다.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일이었지만, 억지로 사람이 있는 일은 아닌 같다. 아마도 정류는 자신이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일을 즐긴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신학교 졸업하고 그해 겨울에 강원도에서 개척교회를 시작으로 목회자의 삶을 살았지만, 목회의 영역이 크든 작든 교인이 많든 적든 목회자에게는 부딪혀 오는 일들로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다. 그것이 육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일로 인한 고뇌도 많다.

이것이 목회자의 삶의 일과이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자로서 겪어야 되는 어려움이 있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가난케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과정을 통해 연단하시고 훈련하셔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일하게 하신다. 정류의 일생에 부딪혀 왔던 많은 사건과 고난의 일들로 하나님은 그를 연단시키셨고 강하게 하셨고 바르게 하셨다. 그것들은 그를 정류로 만들고자 하신 하나님의 훈련이었다. 그것은 그를 사용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1. 능라도교회

 

정류는 1942 4월에 장로회신학대학교 전신인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 수업을 받았고, 1944 12 20 평양신학교 졸업 1945년부터 1946년까지 평양의 능라도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때 정류의 나이가 25 때인 젊은 시절부터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같은 고향 출신인 조성암과 평양 시절부터 친하게 교류하면서 1945 12월에는 평양 신하동교회에서 목회했던 조성암과 서로 교회를 바꾸어 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때 인도했던 부흥회가 정류에게는 부흥회였고, 정류는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주간 동안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전심전력으로 말씀을 전했다.

정류는 당시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목회했던 김화식을 평생의 스승으로 생각했고 그로부터 받은 감화를 받았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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