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19호]  2018년 11월  17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장로열전
빛을 남긴 선진들(목사/장로)
노마트톡
통일밥상
통일로 가는 길
한국교회비사
이슬람과 한국교회
Home > 미션 > 빛을남긴 선진들(목사/장로)
[장로]교육자로서 대광과 더불어 함께한 이창로 장로 (17)
[[제1564호]  2017년 9월  16일]


스터링대학에서 명예교육학 박사 취득

숭실대학

나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대광에서 부교장으로 일하는 동시에 한경직 목사님이 학장으로 계시던 숭실대학에 강사로 나가면서 중등교사 자격증을 받기 위한 교직과목을 강의하였다. 숭실대학은 일찍이 1897년 우리나라 개화기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 배위량(W. M. Baird) 박사에 의해 평양 신양리에 세워진 숭실학당에 1905년에 이르러 대학부를 설치함으로써 시작된 한일합방 이전, 유일한 최고 학부로서 우리나라 대학의 효시가 된다. 1906년 장로교 선교부와 감리교 선교부가 이를 공동으로 경영하기로 합의를 해서 이름이 합성숭실대학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문학부와 이학부가 있었고 유명한 선교사 윤상온(M. C. Cane) 박사가 오랫동안 교장으로 있으면서 대학을 키워왔고 많은 교역자와 국가지도자들을 육성해왔다. 그러나 일제가 동화정책을 써가면서 1935년부터 한국 사람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는데 윤상온 교장은 이를 끝까지 거부하여 마침내 교장 인가 취소를 당하게 되고 38년에는 숭실대학과 숭실학교 그리고 숭의여학교는 폐교되기에 이르렀다. 해방 후 월남한 숭실 동문 배민수(裴敏洙), 이인식(李仁植), 한경직(韓景職), 우호익(禹浩翊) 씨 등의 재건 노력으로 폐교한지 16년만인 1954 4월에 영락교회에서 개교하게 되었다. 숭실대학은 약 3년 동안 영락교회 구내에서 강의를 계속하다가 1957년 상도동에 자리 잡고 교사를 지어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하였으나 오늘에 와서는 큰 캠퍼스를 가지는 종합대학교로 발전하여 오늘에 왔다.

 

학감 취임

나는 5.16 후 대광을 사임하고 첫 일 년간은 전임강사 자격으로 교직과목-교육원론, 교육과정, 교육방법, 교육평가, 교사론- 등 전 과목을 매일같이 강의하다가 다음 해부터는 학감(Dean)이란 책임을 맡게 되었다. 학감은 오늘날의 부학장과 같은 직위였는데 당시 숭실대 학장은 숭실대학 출신으로 미국 L.A에 거주하던 목사 김성락(金聖樂) 박사였다. 김박사는 모교에 초청되어 모교 발전을 위해 활동해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미국에 그의 가족과 재산이 있는 관계로 학교 캠퍼스에 상주해 있을 형편이 못되어 결국 내가 그의 부재 시 학장대리를 하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내가 이 책임을 맡게 된 데는 전 학장 한경직 목사님과 숭실대학 명예학장으로 수고하시던 선교사 옥호열(H. Voelkel) 박사에 의해서 된 것으로 안다. 옥호열 박사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해방 전에는 경북안동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일제 말기에 귀국하였고 해방 후에 다시 내한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6.25사변 당시에는 피난 신도를 돌보는 일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등 어느 방면에서나 적극적으로 활동하신 분이었다. 이분은 대광학생을 위하여 영어성경시간도 가졌고 숭실대학에서도 설교와 영어성경강의를 하면서 학장을 도와 대학운영기금을 위해 미국교회에서 모금운동을 벌여 많은 실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지금 숭실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공학관은 그의 모금에 의한 것으로 특별히 볼켈 홀(Voelkel Hall)로 이름하여 그를 기념하고 있다. 이 분은 또한 한경직 목사님과 프린스턴 신학교 동기로서 영락교회는 물론 많은 개척교회를 위해 힘쓴 분으로서 우리 정부도 그의 공적을 인정받아 국민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명예박사 학위 취득

나는 학감 책임을 맡고 최선을 다했다. 다행이 미국 유학 중 미시간 대학교 대학원에서 고등교육에 관한 과목도 한두 과목 이수한 바도 있어 연구적으로 일에 임하였다. 특별히 흐트러진 회계경리체계를 바로잡기도 하고 미완성으로 오래 끌던 본관 건축도 옥호열 선교사의 모금에 힘입어 거뜬히 완공해 놓을 수 있었다. 이런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 기뻐했던 분은 옥호열 선교사였다. 그는 나에게 큰 신뢰를 가지면서 학교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나를 숭실대학에 꼭 붙잡아 둘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한경직 목사님과 의논하여 나에게 명예학위를 받도록 하는 일을 나도 몰래 추진하여 결국 미국 캔사스주에 있는 장로교 대학인 스터링 대학(Sterling College)에서 명예교육학 박사를 받도록 주선하였다.

학위수여는 1964 5 24일 동대학 졸업식에서 있었다. 대학교정 잔디밭 위에서 기독교식으로 진행된 식전은 화기애애한 가운데 모두 웃는 얼굴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학부형은 물론 홈 커밍(Home Coming)에 해당되는 동문들도 많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졸업식 전야에 상봉동문들의 내외가 기숙사에 유숙하면서 대만찬회를 개최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 모습이었다. 이런데서 모교애와 동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일은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후일 대광동문회에서도 졸업한지 30년 된 동문들이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재상봉의 밤을 가지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계속해 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명예학위를 받은 나의 심정은 기쁘다기보다는 무거움을 느끼는 편이었다. 나로서는 대광교육을 통해서 내가 꿈꾸는 교육이상을 어느 정도 실현했을 때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내가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해 주신 한 목사님과 옥 선교사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147. 철종의 가계도 ..
59. 초락도 금식 기도..
332. ‘기도합니다’와..
<94-총회총대5>
[장로] 평생을 교회·..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추수감사절, 감사로 제사드리는 .....
가을인가 했더니 벌써 입동! 건.....
학원선교주일, 지혜와 믿음이 .....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