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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숙명여대 음대학장을 역임한 작곡가 이 흥 렬
[[제1571호]  2017년 11월  11일]

이흥렬(李興烈, 1909-1980) 작곡가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하였다. 어머니는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기독교 신자가 되어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전도부인으로 생활하였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흥렬은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 계통 학교인 원산광명학교에 진학하여 매일 아침 채플 시간에 1시간씩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불렀던 찬송가를 암송하다시피 하여 집에 와서 불렀는데 그가 즐겨 불렀던 찬송가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어둡던 땅이 밝아오네/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2 :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오래전 선지자/꿈꾸던 복을/만민이 같이 누리겠네

3 : 보아라 광야에 화초가 피고/말랐던 시냇물이 흘러오네/이산과 저산이 마주쳐 울려/ 예수 은총을 찬송하네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이흥렬은  성가대 지휘자가 오르간을 때마다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저도 오르간을 배워서 오르간을 있도록 도와주세요.그는 아침 일찍 교회에 가기위해 혼자서 악보를 보고 오르간을 쳤는데 소리를 들은 담임목사는 오르간을 있도록 배려를 주었고 그는 아침저녁으로 교회에 있는 오르간을 치면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의 오르간 실력이 연습을 할수록  나아지자 담임목사는 그에게 교회 반주를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흥렬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일본 유학은 꿈도 없었지만 그의 오르간 연주에 놀란 담임목사는 일본 유학을 권유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이흥렬은 열심히 오르간 연습을 하였으며 일본 도쿄(東京) 있는 도쿄음악대학교(東京音樂大學校) 지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원서를 제출하기위해 부산에서  관부 연락선에 승선하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하였다. 시모노세키 항에서 도쿄로 가는 열차를 탑승하고 드디어 도쿄 음악대학교에 도착을 하였다. 그는 교무과에 가서 원서를 제출하고 시험 일자만 기다렸다. 점점 시험 일자는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숙집 가까운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고 한다. 시험을 치르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일이 되었다. 학교 게시판 합격자 명단에 <李興烈>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그는 자리에서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합격한 이흥렬은 고학으로 공부를 하였다. 그는 피아노가 없어서 기도하던 뜻하지 않게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구입할 있도록 돈을 보내주었고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하였다. 일로 학교에서도 그를 따라올 만한 학생이 없었다고 한다.

모든 과정을 마친 이흥렬은 귀국하여 모교인 원산 광명학교 음악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곡을 하였다. 1934 마침내 그의 처녀작품인 <이흥렬 작곡집> 출판하자 한국 음악계가 모두 놀랐다고 한다.

무렵 경성보육학교 교사로 청빙을 받으면서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여기에 정동제일교회에 출석을 하여 성가대 지휘를 맡으면서 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했다고 한다. 그의 실력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이화여대, 고려대 등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1953년에는 한국작곡가협회 부위원장직을 맡기도 하였으며, 고려대 교수, 1963년에는 숙명여대 교수로 음대학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외에도 대한민국 문화상, 한국방송문화상, 대통령문화훈장 등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는 <바위고개> 비롯해서 <봄이 오면>, <어머니의 마음>, <고향 그리워>, 군가 교가, 응원가 400 곡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자녀는 2남을 두었고 장남 이영철은 서울여대 교수로, 차남 이영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손주 철주는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작곡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그가 남긴 공은 잊을 수가 없다고 지금도 말을 하고 있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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