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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황사영과 정하상 – 40년 세월이 가져온 것
[[제1590호]  2018년 4월  14일]

1. 황사영의 시대-조선 로마가톨릭교회의 1

황사영은 이를테면 조선 로마가톨릭교회의 1기의 사람이었다. 그의 인척 이승훈이 1784 북경에 가서 세례 받은 것으로부터 조선의 로마가톨릭교회가 출발한다고 하면, 황사영의 순교가 1801년의 일이었으니, 역사 겨우 17년의 짧은 시대를 황사영은 살아갔다. 먼저 걸어간 자가 없기에 그의 시대 로마가톨릭교회는 모든 것을 직접 부딪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처음 가는 길이어서 그랬다. 로마 교회의 주교도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환상적이며 위험천만한” “음모 여겨졌을 백서를 그는 쓰고 있었다. 백서의 사본을 일이 있다. 가로 62×세로 38㎝의 비단에 그는 1 3천여 자의 한자를 썼다. 한글 컴퓨터 글씨로 보면 폰트 9 정도의 작은 크기로 한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백서는 외관상 문단으로 되어 있다. 1 3천여 자를 쓰는 동안 쉬어갔던 것일까. 박해 상황에서,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태에서, 청국에 있는 주교에게 십자가 아래에 있는 조선 교회를 구원해 달라 편지를 냈을 그의 신경은 온통 과민하기만 했다.

 

2. 정하상의 시대-조직과 체계화의 2

정하상은 황사영 때의 신유박해를 겪으면서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쪽에서 스스로 뻗어 찾아 나선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세계 교회의 선교와 연결된 조선 교회를 희망했다. 길에서 정하상은 로마가톨릭교회 조선교구 독립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의 나이 22 북경을 찾아가선교 사목의 실현을 약속받고 했으며, 그의 나이 32 정하상의 편지가 로마 교황에게 전달되었다. 그로부터 5 후인 1831 정하상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조선 교구 독립이 선언되었고 초대 주교 브뤼기에르 신부가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황사영의 역사의 1기에 없었던 세계 교회와 연결된 조선 교회, 조선 교구가 실체로 등장했다.

한편 정하상의상재상서 조선 교회의 체계화의 모습을 명시한다. 상재상서 변증서이다.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얼마나 진실 공명한 종교인가를 자신들을 박해하는 조정에 올린 글이었다. 여기 박해하는 조정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진 것이 눈에 띈다. 조정은 적이 아니다. 조정 역시 함께 복음의 진리로 나아가야 사람들이다. 박해자들을 향한 적대감이 아니라 연민과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있다.

체계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양편에서 증명된다. 그의 호소력은 국경을 초월했다. 상재상서는 콧대 높은 중국에서 선교와 신학 교육의 교재로 널리 이용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직전 글에서 밝혔듯이, 조선 조정의 변화까지 가져왔다. 조정도 천주교도들을 이상 반역자로서가 아니라 사교에 빠진 어리석은 백성으로서 불쌍히 여기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류금주 목사

<(총회인준)서울장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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