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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120)
[[제1591호]  2018년 4월  21일]

능동적인 한국교회의 모습 필요

5. 대구제일교회 (5)

 

작은 일이지만 문제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한 초기 대구제일교회의 당회를 통하여 합리적이면서도 원칙을 지킨 지도자들의 능동적이면서도 분명한 태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는 것이다. 말을 다르게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미래 한국교회에 기회를 수도 있고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고지신하는 태도로 상황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원칙을 지키는 능동적인 한국교회의 모습을 세워가야 것이다.

 

1) 대구제일교회 창립 일자에 관한 의견들

(1) 1897 11 1 창립설

정류가 집필과 편집을 담당한 『대구제일교회 90년사』는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에 관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제일교회의 개척자들이란 제목의 사진 모음에 위와 같이 개의 그림과 사진 밑에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대구제일교회는 사람이 대구제일교회의 창립과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지지만 역사학적인 입장에서는 안의와 기원설에 기울어진 입장을 표명한다. 대표적인 사람은 대구의 재야 사학자이고 기독교 원로 사학자였던 이재원이다. 이재원이 개인적으로 출판한 『이재원 고희기념. 대구기독교역사논문집』에서애덤스 선교사는 1897-98 선교보고서에서 자신의 대구 도착 일자는 1897 11 1일이라고 밝혔다라고 하면서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일자를 1897 11 1일로 잡아야 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1897 11 1일에 대구에 들어 왔다.(We entered the city on November 1st.)

그리고 1928-1929년의 대구선교지부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보도했다.

「애덤스 박사는 대구에 도착한 직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선교 기지내 사랑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Dr. Adams, after his arrival, lots no time but at once began holding services in the "Sarang" of the compound)

이러한 사료를 가지고 이재원은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일자를 정리하는 과정에 다음과 같은 논지 전개를 한다.

위의 기록을 하나로 엮으면 「애덤스 목사의 일행은 1897 11 1 대구에 와서 남문안 선교기지 사랑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했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구성된다. 예배에 참석한 일행 중에는 상주군 낙동면 화산동 출신의 김재수(金在洙) 있었다. 이야기는 비록 짧지만 이야기 속에는 첫째 예배를 인도한 목사애덤스 들어가 있고, 둘째 예배에 출석한김재수 들어가 있고, 셋째 계속 예배드릴 있는 예배당사랑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1897 11 1일의 사건 속에는 교회 설립의 3 요건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애덤스 목사는 1897 11 1 대구 남문안에서 제일교회를 창립했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있게 것이다. 이렇게 창립된 제일교회는 일찍부터 1897년을 교회 창립연도로 인식하고 과거 70년간을 준수해 왔다.

그러면서 이재원은 대구제일교회가 1897 11 1일에 창립된 것을 계속 논증한다. 그의 논증은 명확하고 그는 그냥 자신의 심정만 말하지 않고 사료를 가져와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그가 5()70 전통의 창립연도 1897이라는 제목으로 말하는 논증 자료는 다음과 같은 5가지이다.

1) 대구제일교회가 1897년을 창립연도로 지켰다는 확실한 기록은 어도만 목사(Rev. Walter C. Erdman) 교회 창립 1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는 그의 편지 속에 발견된다. 어도만 목사는 1908 12 22일자 미국 해외선교부 브리운(Brown) 총무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선교지부(the station) 식구들은 Mr. and Mrs. Adams 부부가 도착한 10 개척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대가족입니다. [...] 그런데 금년은 대구에 기독교 공동체(=교회) 시작된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사실을 기념하여 특별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2) Erdman 보고서 제출 이후

일제 말기까지 교회 창립기념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그러나 1923 이만집 목사의 자치운동 증인으로 법정에 방해법 목사(Rev. Herbert E. Blair) 판사가 「남성정 교회는 언제 설립되었는가요?」라고 묻는 질문에 1987년에 설립되었소」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방혜법 선교사는 제일교회가 창립된지 16 밖에 안되는 1913년에 대구 선교지부에 부임했고, 경북노회장을 역임한 책임있는 고참 선교사였다. 따라서 그의 법정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3) 광복 1947년에 제일교회는 한병혁 목사 주관으로 제일교회 창립 50주년(희년) 기념 북문교회( 문화 교회 전신) 설립했다. 행사는 물론 1987년을 창립연도로 삼은 것이었다.

4) 제일교회는 1957년에 교회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으로 수성구 상동에 상동교회를 설립했다. 행사도 물론 1897년을 창립연도로 삼은 것이다.

5) 제일교회는 주보 표지에 금년은 「우리교회 창립 60주년」이라고 인쇄하여 배포했다. 이것은 모든 교인들에게 1897년이 제일교회의 창립연도라고 홍보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재원은 이상과 같은 1897 기원설의 근거를 다섯 가지 이유로 밝히면서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연도를 밝힌다.

대구제일교회는 창립 이후 1897년을 교회의 창립연도로 인식하고 70주년 행사시까지 준수해 왔다. 반면에 대구제일교회가 1893년을 창립연도로 지킨 기간[] 80주년 행사 이후 고작 30년이다. 30 역사를 고집하는 것은 70 역사를 버리자는 말과 다름없다. 정확히 말하면 1893년은 대구에 기독교가 전래된 연도이고 1897년은 대구제일교회가 창립된 연도임을 천명하려는 것이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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