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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1호]  2018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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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124)
[[제1595호]  2018년 5월  19일]

정의와 공의가 땅에 실현되기를

5. 대구제일교회 (9)

 

3) 안의와와 그의 동역 선교사들(2)

로즈(Harry A. Rhodes)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을 읽으면서 1884-1934 사이의 한국 인구의 절반 가량 경상도에 살았다는 사실과 많은 사람이 가난에 허덕이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가지 사실이 새삼 다가온다. 첫째는조선 8도에서 어떻게 경상도에 그렇게 인구가 많이 몰려 살았을까? 사실과 둘째는 영남과 호남은 아직도 이토록 서로를 겨누고 있을까? 사실이다.

영남에는 들이 좁을 뿐만 아니라, 산이 많고, 더욱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등의 산이 외부 세계와 경계를 이루고 남과 동은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좁은 농토에서 나는 산물로 많은 사람이 함께 먹고 살아야 하니 대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가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같은 마을에 처녀들이 시집갈 때까지 말도 먹고 시집을 가는 일이 허다했다 한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대구에서 자취 생활을 했는데, 당시의 주식은 쌀이었다. 당시 말은 10되인데, 당시 자취하면서 다른 군것질을 하지 않으면 보통 말로 달을 먹고 살았다. 그런데 필자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는 너무 가난하여 시집갈 때까지 말도 먹고 시집을 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남지역의 경제 사정이 열악했다. 영남 지방에 많은 사람이 살아 가난하게 살면서도 산맥으로 둘러 쌓인 영남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가난하게 서로 부대끼면서 살았다고 본다. 그러다가 일본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면서 철도가 놓이고, 근대적인 도로가 생기고 도로 위로 차가 달려 이동과 이삿짐 옮기기가 쉬워지면서 영남의 많은 인구가 농토가 많은 호남과 기호지방 등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동서와 남과 북을 돌아 봐도 영남지역 출신이 없는 곳이 없고 전국 어디를 가도 자기 윗대 조상이 영남에서 번도 살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필자의 부친은 4 외동이어서 가까운 친척이 없다. 가장 가까운 친척은 충청도에 살고 있다. 아마도 친척의 조상은 필자의 윗대 조상이 살았던 경남 거창에서 가난이 싫어 충청도로 이사를 가지 않았을까? 우리 조상도 거창을 떠나 충청도로 갔다가 다시 성주로 가서 잠깐 살다가 고령에 정착했다고 한다.

로즈의 말처럼 1884-1934 당시의 한국 전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영남에 편중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이 가난에 찌들려 살아갔다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아웅다웅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땅에 이토록 심한 지역감정이 존재할까? 지역감정은 자기가 태어나고 곳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같다. 예를 들면 우리 조상 어머니는 전라남도 순천이 본인 가정 출신이신데 대대로 경상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박혁거세는 분명 경주 사람인데, 후손은 조선 팔도로 흩어졌고 우리 조상 중의 외가 조상은 순천에서 우거했던 적이 있어 순천을 본으로 가졌지만, 영남에 우거하면서 영남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에 김대중 씨가 대통령 후보인 시절에 영남 김해로 와서 종친회에 참석하고 행사의 주빈이 것이 신문에 보도되는 것을 적이 있다. 그때 기사를 보니 아무리 지역감정이 심한 시절이라도 지역감정이 일가친척의 구심력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일가친척은 까마득한 옛날에 가족이었던 조상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옛날도 아닌 1884-1934년에 한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영남에 살았다면 비록 부대끼면서 좁은 농토를 갈고 씨를 뿌려 거두며 살았던 이웃사촌들이었을 것이다. 있는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본다는 말이 있다. 한말도 먹지 못하고 시집을 정도로 찌들려 어렵게 살다가 기차가 생기고 도로가 생겨 차가 다니면서 쌀이 많이 나는 호남과 기호 서울 등등 다른 지방 등으로 먹고 살기 위하여 뿔뿔이 흩어진 이웃사촌들이었다면 문자상으로는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지역감정이 없어야 마땅하다.

군대 있을 필자가 소대장으로 있는 중대의 중대장은 호남인이었는데 소대장 명은 영남인이었고 명은 호남인이었다. 소대장 명은 육사 출신 명은 삼사 출신 명은 학군 출신이었다. 근데 호남 출신 중대장이 가장 신임하던 사람은 영남 출신으로 육사 출신이었다. 그때는 지역감정보다, 계통을 중시한 듯하다.

만약 영남에 주둔하는 호남 출신 군인이 독도가 일본의 침입을 받는다면 참전을 안하고, 호남에서 복무를 하는 영남 출신 군인이 흑산도 인근에서 고기잡이하는 호남인이 어선이 중국 어선에 나포되어 억류되어 있다면 출동하지 않고 몰라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독도가 외국군에 의하여 침범을 당하면 누구든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헌신할 것이고 흑산도가 위험하면 누구라도 조국의 국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민족이고 지향점을 가진 땅의 사람들이다. 정류는 영남인이었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에 보니 호남에서 목회했던 광주제일교회 한완석과 호형호제하면서 친밀하게 지냈던 것이 생각난다.

문제는 우리를 묶을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중심으로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 살아간다면 땅에 화해와 화합이 이루어지고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리라고 본다.

로즈가 정확한 통계치를 말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러나 정류가 자라난 당시의 영남지역 형편을 살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보고서이기에당시 영남 지역에 살았던 정류나 땅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얼마나 찌들린 삶을 살았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영남 뿐이겠는가? 전국적으로 일제() 수탈과 있는 사람들의 억눌림 속에서 많은 없는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야 했다.

지금도 그런 아픔이 계속된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지금도 국민 사이에는 있지도 않은 지역감정을 부풀려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어려운 이웃을 노리는 이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땅에 정의가 세워져야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평화가 정의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평화를 선도한다. 그래서 아모스는오직 정의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5:24)라고 했다.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정의가 땅에 사라지지 않도록 애쓸 많은 땀방울들이 모여 평화가 되리라고 본다. 정의는 정치가들의 노력에 의하여서도 이루어지지만, 그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정의가 하나님의 섭리와 어떤 연관 속에 있는지를 살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정의가 땅에 실현되도록 애써야 것이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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