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19호]  2018년 11월  17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장로열전
빛을 남긴 선진들(목사/장로)
노마트톡
통일밥상
통일로 가는 길
한국교회비사
이슬람과 한국교회
Home > 미션 > 빛을남긴 선진들(목사/장로)
[목사]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126)
[[제1597호]  2018년 6월  2일]

놀라운 선교의 열매맺은 안의와

5. 대구제일교회 (11)

 

3) 안의와와 그의 동역 선교사들 (4)

대구제일교회 초창기 당회록을 보면 안의와는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처음은 신비에 둘러싸여 있기 마련인데 안의와는 대구 제일교회의 처음 세례문답을 하면서 비록 정식당회를 열만한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김재수가 조사의 신분이지만 당회에 입회시켜, 당회를 열어 세례문답을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세례문답을 혼자 수도 있고 조사 김재수가 옆에 있어도 혼자 진행하고 혼자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정식 당회원도 아닌 김재수와 함께 세례문답을 진행하고 함께 의논하고 같이 결정하여 세례자를 세웠다. 그만큼 그는 지혜롭게 처신하여 문젯거리를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인 자료는 대구제일교회의 정말 귀중한 초기 역사 자료이다.

그는 대단히 선교에 열심을 내었다. 그는 대구제일교회 담임목사의 몸으로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일하는 대구 선교지부의 책임 선교사로서 함께 일한 장인차와 부해리 등의 선교사들과 아주 조화로운 선교활동을 하여 대구를 2 예루살렘으로 칭할 정도로 모법적인 선교지로 만들었다. 이런 모범적인 선교 사역은 배위량의 선교 방법론을 그가 그대로 받아들여 대구와 경북지역에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 더욱이 대구 선교부의 대표였던 안의와는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함에서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했다. 그것은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선교사들의 협력 정신이 어우러진 위대한 선교 사역의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구 경북 교회 역사의 아버지라고 말할 있는 이재원은안의와(安義窩) 목사에 관한 기초 연구 남겨 놓았다

이재원이 안의와에 대하여 논문에 안의와에 대한 연구를 다음과 같은 구조로 했다.

 

1. 연구해야 이유

2. 안의와 목사의 출생교육 그리고 대구 부임

3. 안의와 목사가 설립한 교회들(1897-1914)

4. 안의와 목사의 가족

5. 안의와 집안의 전도 기금(The Adams Evangelistic Fund)

 

이재원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므로 정식 교회역사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재야 교회 역사학자로서 대구 경북지역 역사의 기초를 만든 장본인이다.

필자는 역사학을 좋아했고 필자가 졸업한 독일 튀빙겐대학은 필자가 전공한 신약학 분야에서 교부신학이나, 초기 교회사를 신약성서 배경사에서 다루므로( 쿰란-에세네 문서, 그레코-로만문헌과 역사, 속사도 문헌과, 초기 교부문헌 ) 교회사와 일정부분 겹치게 된다. 그래서 귀국 여러 동안 교회사학회에도 정회원으로 참석하여 학회 활동도 했다. 대구로 이사를 이후로는 시간의 제약을 많이 받아, 주로 신약학회에서만 활동했기에 교회사학회에 참석은 하지 못했지만,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더욱이 정류 이상근과 배위량을 연구하면서 교회사에 대한 글을 많이 작성하였기에 일을 위하여 이재원의 글을 자주 접하고 이재원을 연구한 학자들의 글도 자주 보았다. 이재원이란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 대구 경북 지방의 교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재원은 안의와를연구해야 이유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안의와 목사(Rev. James Edward Adams) 대구에서 처음 교회를 설립하고, 제일 처음 초등학교와 남자 중학교를 설립했다. 그래서 그는 대구경북 장로교회의 창시자가 됨과 동시에 대구 기독교학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사실은 지방 현대교육의 선구자가 된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같은 유명한 그의 이름을 간직하기 위해 제일교회는 Adams Hall Adams 강좌를 만들었고, 계성학교에는 Adams관이 보존되어 있으며, 계명대학교는 Adams Chapel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안의와 목사가 도내(道內) 직접 설립한 교회의 수도 최소한 26개에 이르고, 또한 전도기금을 활용하여 본인 대신 전도인을 파송하여 설립한 교회의 수는 1930 1 현재 경북노회 전체 설립교회수의 25% 이르며, 전도기금에 의해 영구히 운영되는 교회의 수는 73개이다. 대구경북의 기독교가 급속히 성장한 이유는 흔히 말하는 네비어스 전도방식(Nevius Method)으로만 설명할 없고 상당 부분 에덤스의 전도기금(The Adams Evangelistic Fund) 활용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회사가도 있다.

안의와 집안은 대를 이어 대구경북 지방의 복음화에 이바지했다. 결과 안의와 집안은 대구경북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업적을 남겼다.

최초의 순교자를 탄생시킨 것도 안의와 집안이었다. 하지만 안의와 목사와 그의 가족에 대한 연구는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하다. 오히려 전무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와 같은 풍토에서 제일교회 마당에 서있는 <안의와 선교사 기념비> 비문이나 <제일교회 희년 기념비> 비문에 안의와 목사 관련 사실이 틀리게 기록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안의와 선교사 기념비문에는 안의와 목사의 출생지와 신학교 졸업 연도가 틀리고, 50주년 희년 기념비문에는 안의와 목사의 내구(來邱) 연도가 틀린다.

필자는 이같은 오류를 바로 잡고 보다 정확한 대구 기독교 역사를 기록하고 싶은 일념에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재원은 1897-1914 사이에 안의와가 설립한 교회들을 정리했는데, 17 동안에 26개처의 교회를 설립한 안의와의 열심과 헌신이 정말 놀랍다.

이렇게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맺은 안의와를 기억하는 사람이 대구 경북을 벗어나면 많지 않다는 것이 놀랍고, 대구 경북지방의 신자들과 목회자라고 해도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이들은 안의와를 기억 못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 상당히 경이롭다.

그럴까? 지금은 정보화의 시대이므로 주위에 쌓여 있는 정보만 듣고 이해하는데도 힘든 시대이므로 지나온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지 않고는 바른 미래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과거의 장점을 잊어 비리거나 잃어버릴 있고 과거의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의 위대한 선교 정신과 인내심, 모험심과 열정과 열심 그리고 순수한 신앙심을 잃은 현대 한국교회는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현혹되어 진정한 자아 성찰 없이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아간다. 뒤돌아 마음도 여유도 없다.

한국교회, 아니 적어도 대구 경북지역의 교회들만이라도 배위량, 안의와, 장인차와 부해리 같은 초기 선교사들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알아야 현대 교회의 덩치에 맞는 역할을 있을 것이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147. 철종의 가계도 ..
59. 초락도 금식 기도..
332. ‘기도합니다’와..
<94-총회총대5>
[장로] 평생을 교회·..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추수감사절, 감사로 제사드리는 .....
가을인가 했더니 벌써 입동! 건.....
학원선교주일, 지혜와 믿음이 .....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