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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믿음의 선진, 삼형제이야기 오윤선•오형선•오원선 장로 (3)
[[제1608호]  2018년 9월  1일]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이 뿌린 기독교 복음의 씨앗은 1894년 청일전쟁을 전후로 서서히 자라났다. 선교사들은 전란 때에도 피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했고 양반들은 이를 지켜봤다. 그러나 하층민이 모여 있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았다. 반상의 차별이 심해 한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고, 언어에 존대체가 있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양반들이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천민들과 한자리에 앉아야 했기 때문에 변장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자기 집 하인을 보고 당황해했다. 언더우드는 이 모든 광경을 목도했다.

그래서 언더우드 목사는 젊은 상류층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을 큰 과제로 여겼다. 그는청년'이란 말이 없던 시대에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시절을 보내는 조선 청년들을 교회로 이끌 방안을 구상한 것이다.

당시 기독 청년은 주로 하류층으로 150~200명 정도가 있었지만, 서울에는 5만여 명의 청년들이 살고 있었는데 조선 청년들은 혈기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할 곳이 없었다. 공원과 도서관은 물론 오락이나 스포츠 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랑방에 모여 노름이나 하고 주막이나 드나드는 정도였다.

그래서 지식층 청년들을 위해 1903 10월 황성기독교청년회라는 YMCA를 설립하였다. 언더우드는 선교의 문을 젊은이들과 상류층으로 확대하는 데에 앞장선 것이다. YMCA 운동은 젊은 청년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교제하고 배우고 토론하는 운동으로 민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각종 신문들과 운동경기의 보급을 주도하고 일제의 압박아래 신음하는 한민족의 계몽과 교육을 이끌었고, 그래서 독립운동가도 수없이 배출했다.

오윤선, 오형선 형제도 이 모임에 참석하였고, 당시 YMCA에는 이상재를 비롯하여 이원긍, 이승만, 김규식, 윤치호 등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참여했는데, 오윤선 형제는 이들의 기독교적 구국운동에 가슴을 적시며, 민족 지도력 발휘에 감화되고 신앙운동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이때 오윤선 나이 32~3, 오형선은 28~9세 나이였으니,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얼마나 비분강개하며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의 피맺힌 호소가 오윤선, 오형선 두형제의 뼛속 깊이 사무쳤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후일 오윤선은 평양에서 육영사업가와 민족지도자로 오형선은 경상남도에서 독립운동과 교회개척 전도사로 헌신하였고, 그리고 두 형제는 일본의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고 한국 이름을 끝까지 지키는 지조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았으며,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지도 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9 5일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한반도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러시아부터도 마침내 한국에 대한 지도, 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승인받았다. 열강들로부터 한국의 보호국화(保護國化)에 대한 승인을 얻어낸 일제는 한국에 보호조약을 강요하기 시작하여, 군사행동과 토지의 점령, 수용을 단행했으며, 군사, 재정, 외교 고문을 파견했다. 결국 11월에는 고종을 협박하고 일제의 앞잡이들을 매수하여 을사조약을 늑결한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국권을 강탈당한 채 형식적인 국명만을 가진 나라로 전락하여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은 통감정치를 실시하였다. 1907년에는 한일신협약으로 군사권과 행정권을 박탈하고 조선 군대를 해산하며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1909년에는 기유약조(己酉約條)로 사법권과 감옥사무도 박탈하더니 1910 8 29일 한일병합으로 경술국치를 맞는다.

결국 동생 오형선은 대한제국 내장원을 떠나게 되고 한성에서 상업을 하던 형 오윤선과 협의 후 1905 3월부터 두 형제는 금광업을 시작하며 전국 요지를 탐방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경상남도 거창으로 내려온다.

이때 오윤선의 본적이경남 거창군 거창면 하동 359번지'경남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1763번지’로 된 것은 몇 해 동안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서 금광사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이었다.

사업을 위해 주소를 거창으로 옮긴 형제는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의 금광에서 채굴을 시작한다. 오랜 세월을 광업에 종사했던 오윤선은 그동안의 연속된 실패를 딛고, 아우와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은사로 금을 채취하게 된다. 그러자 형제의 기쁜 마음속에는 두 갈래 길로 갈리게 된다. 오윤선은 고향으로 마음이 향하였고, 오형선은 선교의 길로 마음을 정한다. 아우는 이미 미국 북장로교의 심익순 선교사가 한성의 관리 출신인 오형선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순회 전도를 하였기에 설립되는 교회에는 그곳 출신의 조사가 필요하였다. 이미 한성에서 기독교 씨앗이 박힌 아우 오형선의 가슴에는 믿음의 싹이 돋아나 이내 수락하고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기약없이 헤어지는 마당에서 형제는 나라의 암담한 정세에 마음을 같이 하며 그동안의 생활을 추억하고 서로를 위한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때 아우 오형선은 형의 손을 붙잡고 이 어려운 시기에 고향에 가면 꼭 믿음의 길로 가기를 간곡히 당부하였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핍절한 때에 은사를 주셔서 아볼로가 학식으로, 누가는 의술과 문장으로, 욥바의 도르가는 구제로, 빌레몬은 재물로, 빌립보 교인과 루디아는 연보로 자신이 받은 은혜로써 주님께 영광을 드렸듯이 오윤선오형선 형제도 각기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향기로 받으실 만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때가 오윤선의 나이 35, 오형선은 나이가 31세였다.

오장은 장로<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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