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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6호]  2019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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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믿음의 선진, 삼형제이야기 오윤선•오형선•오원선 장로(29) - 오형선 장로(5)
[[제1636호]  2019년 4월  6일]


호주 선교사로부터 세례받아


■ 노현리교회(웅양교회)

안덕보가 선친이 어려운 일을 당해 예수를 믿으면 필히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믿기를 원하는 바스미스 선교사가 가북 하처에 체제한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가북에 가서 스미스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믿기로 결심하고 귀환하여 열심히 전도하여 가족과 김명칠박세경 등 약간 명이 믿게 되어 주후1906822일에 안덕보의 초가사택에서 스미스 선교사의 인도하에 오형선 조사와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 의하면거창군 노현리교회가 성립하다선시(先是)에 선교사 심익순의 전도로 안덕보김명칠김순일 등이 믿고 안덕보의 사저에 모여 회집예배하니조사에 오형선이 시직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0년 산포리 신기촌에 초가3간을 금250전에 매수하여 예배당으로 정하고직원을 선거하니 영수에 김명칠집사에 안덕보가 선출되었다. 1913년에는 안덕보가 영수로 선출되고7월에는 황보기 전도사가 시무하였고, 1914년에는 노현리 평촌으로 초가3간 예배당을450전에 구입하여 이전하는데이듬해 안덕보가 봉천으로 이거하자10여명 교인이 해산하였다그러나1916년 안덕보가 귀환하여 해산된 교인들을 권유해 다시 예배를 드리고 이듬해 노현리 창촌으로 예배당을 이전하였고, 1918년 주남고 전도사가 시무하고, 1923년 오형선 전도사가 시무하였고, 1924년에는 김영석 전도사가 시무하였다. 1927년 거창의 호주여선교부에서 이자면 선생을 파견하여 주간학교를 경영하고이듬해 하기 아동성경학교를 시작하였다. 1933824일 입주상량으로 예배를 드리고 종을 매입하고 종각을 건설하였다. 1230일부터 익년15일까지 이자익최성환 전도사 인도로 제1회 사경회를 개최하였다. 19352월 풍금을 매입하고1230일부터 익년14일까지 이자익주남고 목사 인도로 제3회 사경회를 개최하였다. 1938823일부터27일까지 평양여자신학원 전도부 파견으로 하기아동사경회 및 전도강연을 개최하였다

 

■ 거창읍교회(거창교회)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제7장 경상대리회 교회 조직편에거창읍교회가 성립하다선시에 조재룡김억주 등이 신주(信主)하고 오형선 사저에서 예배하더니 읍내에 예배당을 건축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노현리교회가 부흥하며 자립기반이 갖추어지자오형선은19055월 자신의 금광사무소 직원인 박창호에게 권유하여 같이 남하면 양항리 대곡마을 사무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다이때 거창읍에 사는 조재룡과 김극서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그들은2년 전에 안의교회 조정석의 전도를 받고 믿음의 싹이 자라고 있었으나 같이 예배드릴 신도와 처소가 없어서 아쉽던 차에 금광사무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이들은 함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던 중 거창읍내에 예배당을 설립하기로 한다이후 거창 읍내의 오형선 사저에서 예배드리며 건축연보를 모으니 당시 쌀 한 말이70전 하던 시절에 안덕보2김극서3김억주5조재룡5오형선이10원을 헌금하여25원이 모아진다이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거창읍 하동 현재의 자생의원 터에 있던 초가삼간을1810전에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19091010일 주일에 거창군내 교인 다수가 참석하여 첫 예배를 드리고제직을 선택하니 영수에 오형선집사에 조재룡서기에 김극서감독에 김억주 제씨가 피택되어 비로소 교회제도가 형성되니 이날을 창립기념일로 정하니 교인 수는18명이었다이때 주남고가 입신하고후일 김억주는 고향인 성주로 가고 김극서는 만주 봉천으로 가서 장로가 된다.영수란 한국 초대 장로교회의 평신도 직분 중 하나로 선교사들의 보조역할인 조사를 대행하는 직책으로,장로가 없는 교회에 장로 일도 하고 전도사가 없을 때에는 전도사 일도 하는 직분이었다

191111월 초대교인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가 점차 부흥되고 교인수가40여 명으로 확대되자 예배당을 죽전으로 정하고 기와집3칸을 사서 옮겼다그러다가1912년 교인 수가50여 명으로 늘어 예배당을 중앙리216번지의 현 위치로 초가4칸을 사서 옮겼다

그러던 차에1913년 호주 선교사 맹호은,길아각 두 선교사가 와서 협력 전도를 하니 교회가 점차 발전을 하여 교세가1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이때 처음으로 세례식을 거행하니 오형선조재룡주남고유응춘유기도가 세례를 받아 세례교인이 되었다

1914416일 죽전 소재 맹호은 선교사 사택에서 제1회 제직회로 모이니 선교사 맹호은길아각영수 오형선집사 주남고황보기최성봉,이영근7명이 참석하여 각자 은혜를 나누었다직원회 회록에 의하여 오형선은 제1회 제직회 서기를 맡기 시작하여191926일 제43회 기록을 끝으로 거창교회를 떠나 전도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거창읍교회는191410월 이웃집을 교회에서 매입하여 교회 부지를 넓히고 예배당을 헐어 초가8칸을 새롭게 신축하였으나 점점 교인이 늘어감에 구 예배당을 헐고 기와집32칸을 신축하게 되었다. 19164월 초대 담임목사인 이재풍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19181229일에는 오형선 영수가 거창교회 초대 장로로 장립을 받게 되어, 19193월부터는 경남노회의 파송 전도사로 거창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한다

192379일 예배당이 협소하여 구 예배당을 헐고192564평 함석 반 양옥 예배당을 신축하고89일에 조재룡유주원 장로 장립식을 거행하였다. 1930년 주남고 전도사가 신학교를 졸업하고42세에 목사로 장립하여 거창교회 담임목사로 위임을 받아 전심전력하니 교회 질서가 점차 회복되었고19341014일 교회 창립25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사업으로 무릉교회를 분립시켜20원을 예배당 건축비로 제공하였다이때 교인수는 주일학생 포함668명이었고, 1937년에는 교인수가740명으로 늘어나며 큰 부흥을 이루었다


오장은 장로<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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