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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6호]  2019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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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진, 삼형제이야기 오윤선•오형선•오원선 장로(30) - 오형선 장로(6)
[[제1637호]  2019년 4월  13일]


가랑비에 옷 젖듯 하나님의 은혜 내려


■ 성기리교회(현 성기교회)

6.25전쟁 때 웅양에서 북한군이 총쏘며 넘어와 마을을 쑥대밭을 만드는 통에 교회 문서가 소실되어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교회 창립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다하나는 이상규 교수가 쓴거창교회와 주남선 목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김달성이 행상을 하던 중 창원군 대산면 갈전리의 자기 외삼촌 김치수로부터 수도한 동시에 신약성경과 교기한 매를 받아 왔으나 동지가 없으므로 약2년간 은신중김영석이 유람시 평양과 경성에서 복음을 얻고 돌아온 후 역시 신심이 있어 인도자와 동지자 얻기가 숙원이던 차 김달성과 심기 상통할 기회가 있어서 결신하고 이에 백경칠도 참가한다김달성김영석,백경칠은 당시 거창 지방 매서인 오형선을 청하여 오형선의 인도와 웅양면 노현리교회 안덕보의 회합으로191377일 첫 예배를 두드린다

최초3인이 김달성 사택에서 예배하여 오던 중 선교사 맹호은길아각과 전도사 황보기의 순회 인도로191311월 경에 교인이10여 명에 달하고 헌금6원으로 약3평여의 건물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며 열심 회집한다. 1914~5년경 외적 핍박이 심하여 신자 중 낙심자가 속출하고최초 신자 김달성이19162월 창원으로 이거함으로 남은 신자가 겨우6,7인에 불과하였다설상가상으로 교인들의 가세가 빈곤하여 예배당 수리도 못하게 되어 풍창파벽이 되고예배당이 도괴되어 부득이 김영석의 사택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니 남은 교인이 남23인 뿐이었다

19173월에 황보기 전도사의 노력으로 각처 유지로부터 연보 금3원을 얻어서 도괴된 예배당의 고재목을 이용하여 개축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남 교인1인은 공사를 조력치 못함으로 김영석 가족3인이 전력으로 공사에 노력하여 동년5월말에 준공되어6월부터 예배를 드리게 외어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그러나1918년 김영석이 관직을 인하여 출타케 되어 가족2인만이 인도자도 없이 겨우 교회를 유지한다. 1918년 겨울부터 김인석이 신주하고, 1919년부터 교회를 인도하게 되며 김달성이 뒤이어 고향으로 돌아와 협력으로 열심 전도한 결과2명의 청년이 믿게 되고192012월에 김영석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어19216월에는 교인수가10여 명에 달하여 갱생기를 이룬다

19254월에 김영석이 재차 관직으로 이거하고김달성은 고제로 이거하여 교세가 다시 쇠하여지매 김인석이근하 두 사람의 열심으로1929년부터 중흥케 되며 김달성이 다시 돌아와 조력함으로1931년에는 교인의 수가10명에 달하게 되어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33년에 사무실을 신축하고1935년에는 초가 예배당을 와가(瓦家)로 수리하며 기타 제기구 시설 등을 충실케 하여 교세를 돋우는 중19374월부터 김영석이 관직을 사면하고 돌아와 전도사로 시무함으로 가일층 교세를 돋우었다

그리고 두번째 설은2009626일 거창교회 신중광 장로와 함께 들은 김성규 원로목사의 증언에 의하면1913613일 경남 거창군 주상면 성기리297-7번지에 대지116건평13평의 기와집3간을 예배당으로 신축하고 호주선교사 맥그레이와 오형선 전도사 그리고 안덕보 영수와 김형숙김성규 등 일곱명의 성도가 모여 오형선 전도사의 인도로 성기리교회 설립예배를 드린다김형숙은 김성규 원로목사의 선친으로 교회 설립날에 처음 믿기로 작정하고 참석하는데후일 신실한 믿음을 갖게 되어 영수로 임직된다김성규 원로목사는1959년부터1980년까지2대 담임목사로 시무하였고, 1993년 위임목사로 재부임하여200012월까지 제9대 담임목사로 시무하다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 적화교회(현 하성교회)

오형선 전도사는1923년 경남노회의 파송으로 원기동교회함양교회내가천교회마상리교회성기리교회웅양교회를 함께 순회 시무하던 중 정경식 일가족이 경북 김천군 과곡면 하강동교회에서 이사하여1923215일에 자학동 사택에서 오형선 전도사의 인도로 정경식 일가족과 전 림이 함께 예배드림으로 적화교회가 창립하게 되었다

적화는 궁벽한 농산촌으로 문명혜택을 받지 못한 곳이었다그를 아는 사람으로서는 한문식자가 인구의5분의2가량이요한글 해독자가10분의1밖에 되지 못했다

초창기에는 민중의 교회에 대한 이해부족과 보천교의 핍박으로 인하여 근근히 명백만 유지할 따름이었다. 1925년에 경북 감주교회로부터 임옥견 일가족이 이사오고전두만이 입신함으로 교세가 진흥하면서1927년 봄에 정경식이 현 예배당 옆으로 이사하여 동년8월에 현 예배당을 신축하게 되매 건축공사 청부인 박기엽과 허석두가 믿게 되고 그 외에도 입신자가 속출하여 신자수가 수십 명에 달하나, 1929년 정경식 가족이 제주도로 이사하니 인도자가 없어 교회는 자연히 쇠약하여 지는데1932년 정인대가 웅양교회로 이사함으로 쇠기를 초래한다그러나1932년부터 최성환 전도사가 시무하여 열심으로 전도함으로 삼포리의 인동에서7~8인이 믿게 되고, 1933년 박기엽이 교회 인도인이 되고, 1935년에 장년 주일학교 조직과1937년에 유년주일학교를 조직하고 직분선고로 이무갑이 선출되는 등 질적 충실을 보게 되며6월부터 김영석 전도사가 시무하면서 열심히 전도해19383월에 신입신자가7인이 들어오고, 5월에 우두령기도소 신축까지 하게 되어 갱생의 은혜를 받았다

 

■ 방어진교회(현 방어진제일교회)

192582일 경남노회의 파송을 받은 오형선 장로가 방어진에서 전도하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데초기에는 예배당 건물이 없어 송정한 영수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제20회 경남노회에서 건축연보를 지원받아 이듬해101일 초가1동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고19271월 제22회 경남노회에서 신자39인을 보고하니 방어진 교회명을 허락한다

현재의 방어진제일교회는1983년 김상복 목사가2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26년째 교회를 섬기며 성전을 증축하며그리스도를 본받아 순종으로 섬기는 교회와 성도가 되자’는 표어로 오늘도 교인들과 국내외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오장은 장로<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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