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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 이야기 34
[[제1301호]  2011년 12월  17일]

4. 전쟁의 소용돌이 12

 

<3> 6·25 전쟁 2

 

1950년 9월 28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탈환되고 전세가 호전되자 인돈은 전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인돈은 피난민들에게 먼저 배를 주선해 주었다. 그들은 하루바삐 고향에 돌아가 추워지기 전에 추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군인들의 호송을 받으며 10월 8일 정오쯤 전주에 도착했다. 건물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전기 기구와 문고리, 유리창 등은 다 부서지고 가구는 남은 것이 없었으며 침대와 커튼도 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후퇴하지 않은 가정부들이 부엌살림 기구들을 보관하고 있어서 우선 요리하고 먹을 수가 있었다. 이런 손실은 남아있던 사람들이 겪은 고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산야에, 혹은 집에 숨어 지내느라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공산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안 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선교사와 알고 지낸 사람들은 모두 증오의 대상이었다. 인사례 교장의 어학 선생은 공산군이 철수하는 마지막 날 총살당했다. 그들은 유엔군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물러나기 전 이틀 동안(9월 26-27일)에 많은 사람을 살상한 것이다. 죽은 자들은 총살당한 것이 아니라 괭이와 죽창, 삽으로 맞아 죽었다.

 

기전학교는 포로수용소로 변해 있었다. 인돈은 개교를 하지 못하고 피난 전보다 더 자주 시골 교회로 설교를 나가야 했다. 시골의 작은 교회, 특히 공산당에 의해 피해를 받은 교회들을 다니며 설교하고 위로했다. 그런 곳에는 그때까지도 빨치산이 나타나는 실정이었다. 공산군이 목사들을 다 모이라고 해서 총살한 곳이기도 했다. 목사 가족들은 다리 밑에서 굶주리며 살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땅굴을 파고 숨어 사는 형편이었다. 이 때문에 시골에서 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주로 피난을 왔는데 그들은 또 끊임없는 감찰과 심문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부역을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문제로 경찰은 그들을 고문하고 괴롭혔다.

 

유엔군이 함흥을 공격하고, 길주를 탈환하며, 공군이 신의주를 맹폭하는 동안 전주에 있는 병원은 두 사람의 의사가 일본에서 돌아왔고, 간호사와 의료 기술자가 있어서 우선 개원하였다. 그러나 1951년 1월 1일 중공군 6개 군단이 38선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3일에는 30만 서울 시민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고 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정국은 다시 뒤바뀌었다. 3일 밤 11시만 하더라도 라디오 뉴스에서는 공산군을 서울 북방 8마일에서 저지하고 있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있는 미대사관이 벌써 부산으로 옮겼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 뉴스 때문에 4일 병원문을 닫고 직원들이 떠나서 결국 전주에 남은 선교사는 또 인돈 부부 두 사람 뿐이었다. 부산과 제주에는 벌써 피난민이 넘쳐난다는 소식이었다. 인돈은 5일 철수 명령을 받고 아내 인사례 부인만 부산으로 보내고 자신은 전주에 남았다. 인돈은 그동안 초임지인 군산을 들렀는데 아마 군산의 학생들이 인돈의 회갑연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다녀와서 1951년 1월 14일에 전쟁에 대한 소감을 담아 아들에게 쓴 편지는 다음과 같다.

 

…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유엔군에 속한 군인들은 그들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한국을 정말 구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생명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이곳의 많은 국민들은 지난 여름에 공산당의 학대를 받았으며 지금은 더 이상 그 일을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들과 부모와 아내와 남편과 집,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런 일이 닥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가족은 만일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다 죽을 생각으로 가족 전체가 먹기에 충분한 독약을 숨기고 다닌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곳에는 피난민 천지이다.

 

등에는 아기를 업고 눈과 얼음길을 뚫고 피난 온 사람들이 많다. 38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5년 이상을 공산당 치하에서 살다가 자유를 찾아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온 사람들이다. 많은 지방민들은 그들이 가진 것들을 이미 다 팔고 지난 여름의 시련을 피해서 갈 수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가려고 필사적이다. 나는 어제 군산에 있었는데 이미 길을 찾아 떠난 200명 가량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려고 배편을 찾고 있었다. 이 모든 혼란은 경쟁적인 국제 정세 때문이다. 한국은 오직 국제 정치의 담보물에 불과하다. 이 혼란이 끝나면 이 불쌍한 작은 나라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유엔군이 한국에서 완전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이 모든 피난민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 사람들은 공산당들이 그들을 대량 학살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해야 할 것이다. 사람 죽이는 것이 상습적인 일이 안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정전을 하고자 하는 유엔 정치위원회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어떤 해결책이 나올 수 있겠지. 그러나 현재로는 거의 희망이 안 보인다. 미국은 지금 소련과 맞설만한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며 그런 준비가 되기까지는 소련이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도록 어떤 종류의 임시 협상이라도 할 태세인 것으로 안다. 유엔 정치위원회에서 제출한 정전안은 중공에서 거절되었고 한국 정부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서울 탈환 작전은 계속되고 있고 쌍방에서 서로 죽이는 싸움 역시 계속되었다. 2월 11일 거창에서는 양민을 공비로 단정하고 600여 명을 국군이 살해한 일도 있었다.

 

그는 1951년 8월에 안식년으로 떠나게 되어 있었는데 동족끼리 싸우고 죽이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본국 해외선교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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