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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 이야기 35
[[제1302호]  2011년 12월  24일]

4. 전쟁의 소용돌이 ⑬

 

<4> 회갑 잔치

 

인돈의 생일은 1891년 2월 8일이다. 그래서 만 60세가 되는 1951년 2월 8일은 그의 회갑 날이었다.

그러나 1·4 후퇴로 서울을 내준 뒤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인돈의 회갑은 거론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군산의 영명학교 졸업생들이 회갑연을 거론했다 할지라도 인돈은 극구 사양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의 한국 국민들이 어찌 인돈의 평소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직 서울은 수복하지 못하였지만 중공군의 제 3차 공격 이후로는 UN군의 반격이 시작되어 남한이 우세하게 조금씩 실지를 탈환하는 가운데 있었고 한강-양평-원주-제천-영월로 이어지는 동부전선은 점차 북진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어떻든 군산의 영명학교 동창회가 주도한 인돈의 회갑연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공비’가 출몰하는 군산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인돈 교장의 회갑 축하연의 통지서는 군산의 영명학교 동창회에서 만들었는데 일시는 1951년 2월 28일 오전 11시, 장소는 구암동 예수교 예배당으로 정하여 배부하였다.

 

그 때 보내온 축사 가운데 인돈이 우리나라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그중 두 편만 여기에 싣는다.

 

<여산교회 당회원이 보낸 축사>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외다. 귀하의 과거 육십 평생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신 표징으로 누른 머리가 백발이 되셨나이다. 남은 생활도 주님을 위하여 호호백발 되기까지 장수강령 하소서.

특별히 귀하의 백발은 우리 조선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표징입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호호백발을 이루소서. 그리하시어 주님 앞에 썩지 아니할 영광의 면류관을 약속하소서.

1951년 2월 8일

(일부러 정확한 생일날을 기록한 듯)

여산교회 당회원 일동 올림

 

 

<전주 서문외교회 전희문(집사, 53년에 장로장립), 최귀례(집사)의 축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 민족 위에 미치사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종 인돈 목사님은 주님의 사명을 받으시고 자기의 화려한 고국산천과 정든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파만리 이역 하늘의 험산 준령을 넘어서 이곳에 오셔서 왜적으로 하여금 짓밟히고 그 손에 사로잡혀서 메말라 시드는 가련한 우리 민족을 살리시고자 당신의 일생을 복음운동과 교육사업으로 오늘까지 진력하시며 밤낮 갖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때로는 한숨과 눈물로써 악전고투하시기에 그 얼마나 괴로우셨던가요.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한이 없고 말로 다 어찌 형언하리요. 제일 가까운 한 가지 예로는 지난 6·25 사변과 금번 다시 중공군이 이 강산에 침입한 후 우리 민족들은 어떻게 하였던가. 갖은 공포와 낙망 중에서 인심은 극도로 악화하였고 사람들은 저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각처로 피난 보따리들을 싸가지고 날뛰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목사님께서는 엄연히 앉아 계시면서 더욱이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속히 피난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도 “나는 갈 수 없다” 하시며 귀한 당신의 생명이 위태한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시고 가치없는 우리 생명을 살리시고자 그 얼마나 염려와 수고를 하셨던가요. 생각하면 저희들은 감사하며 부끄러운 것 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은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였지마는 우리 전주에는 목사님과 같은 주님의 의로운 종을 모셨기 때문에 금번의 환란을 면하고 무사히 살아난 줄 확실히 아나이다.

 

목사님! 저희들이 바라옵기는 앞으로도 우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영원히 함께 계셔 주신다면 이 이상 행복이 없겠나이다.

오호라! 세월은 여류하여 목사님께서 처음 이곳에 오실 때에는 늠름한 꽃다운 청춘의 모습이셨건마는 그 동안 주님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위하여 동분서주 하시다보니 어언간 오늘은 육십의 고개를 넘으셨나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목사님께서는 아직 기력이 강대하시고 용감한 청년의 기상을 우리들 눈앞에 보이시니 대단히 안심이 되오며 주님 앞에 감사를 돌리나이다. 그동안 저희들을 위하여 당신의 귀한 일생을 하루 같이 받쳐 주신 그 위대하신 정신을 우리가 본받아 저희도 분골쇄신하며 나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따라가겠나이다.

끝으로 목사님 양위분의 존체 안녕을 빌며 오늘의 회갑을 기리 축하하나이다.

 

1951년 2월 8일

전주서문외교회

전희문, 최귀례 재배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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