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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 이야기 36
[[제1303호]  2011년 12월  31일]

 

4. 대학설립의 소명 ①

 

<1> 대전 기독학관

 

선교부에서 호남지방에 대학을 설립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은 1948년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시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1954년 전주에서 열렸던 전후 제8차 연차대회(5월 6일~15일)에서 대학 설립안이 상정되었다. 장소와, 학교를 이끌어 나갈 정책과 학장을 결정하는 문제였다. 초미의 관심사는 어느 곳에 대학을 세우느냐 하는 문제였다. 광주, 순천, 전주, 대전 등 각 지회에서는 자기 고장에 고등교육기관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위원으로 있던 서의필 목사의 회고는 다음과 같았다.

 

전주, 광주, 순천, 대전은 대학의 위치로서 적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앞에 세 지구는 대전에는 없는 장점이 있었다. 거기에는 모두 대전보다는 훨씬 많은 기독 신자들이 있었고, 비교적 오래된 도시이며 또한 남장로교에서 개척한 호남 교회들의 중심에 가까웠다. 뿐만 아니라 대전을 위해서는 충청 지방에 대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할 대전선교지회가 당시는 설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비밀 투표를 실시한 결과 대전이 다른 지역을 제치고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표결방법은 4개 지역 중 표를 가장 적게 얻은 지역부터 하나씩 탈락시켜가되, 마지막에 두 곳을 남겨 놓고 결선 투표를 하는 방법이었다.

 

투표 결과 첫 번째에 순천이 탈락되었다. 두 번째 투표에서는 전주가 탈락되었다. 선교사 중 인돈은 전주가 교육의 중심지이며 신흥학교의 연장선상에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구바울은 병원 옆에 대학이 있어야 언젠가는 의과대학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주는 두 번째에 탈락하였다. 남은 대전과 광주를 놓고 결선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그날 밤은 어느 곳이건 3분의 2를 얻는 곳으로 한다는 원칙만 정한 뒤 충분히 기도할 시간을 가진 뒤 다음날 속개해서 투표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다음날이 되었다. 이때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대전이 얻게 되어 대학설립 장소로 결정되었다. 대전이 승마경기의 다크호스(dark horse)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전에 대학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기독 대학을 이끌 지도자로는 인돈을 임명하고 그에게 대학위원을 지명하도록 위임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인돈 (Linton, William Alderman) : 의장

■조요섭 (Hopper, Joseph Barron) : 전주대표

■유화례 (Root, Florence Elizabeth) : 목포대표

■서의필 (Somerville, John Notingham) : 목포대표

■김기수 (Crim, Keith R.) : 순천대표, 단 보이열 목사가 오기까지

■구바울 (Crane, Paul Shields) : 병원대표

 

6월 3일 대전에서 대학위원회를 소집했는데 서의필, 구바울은 조요섭의 지프차로 아침 6시에 전주를 출발하여 대전으로 갔고, 김기수(Crim, Keith Renn; 1952년 내한, 후에 기독학관의 교무주임)와 미첼(Mitchell, Herbert Petrie:1949년 내한)은 따로 대전에 왔으며, 인돈 부부는 벌써 대전으로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모여 6월 3일 오전 내내 대학을 세울 부지를 물색하다가 가장 알맞은 땅을 발견했다. 의료 선교사인 구바울은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그곳은 남향이었고, 앞쪽으로는 과수원을 바라보고 나직이 경사를 이룬, 아름다운 푸른 논이 깔려 있는 곳이었다. 낮은 둔덕 위에 작은 토담집이 있었는데, 집 앞 나무에 끈이 뒤얽힌 염소 한 마리가 매여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대학의 중심이 될 첫 건물인 행정관을 짓자고 결정하였다. 나무에 매여 있는 염소는 덤불에 뿔이 걸려, 이삭의 생명을 구했던 아브라함 이야기를 생각나게 했다. 이것은 새로운 대학의 출발을 위해 좋은 징조였다.

 

이 토지 매입은 6·25 전쟁이 나기 전 1949년에 구입한 것이므로 이때에는 대학이 설 장소로 선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땅이 선정된 이상 이곳에 각 지구 기독교학교에서 자란 지도자들을 모아 하나님의 뜻에 맞는 고등교육기관을 세워야 한다고 인돈은 생각했다. 즉 전주가 선교회의 교육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전에서 위치 선정에 나섰다. 그는 이 고등 교육기관이 다음과 같은, 순수한 기독교 대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대다수의 학생들은 기독교인이어야 한다.

2. 대학의 목적은 국가와 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한다.

3. 모든 교수와 직원은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기독교인으로 한다.

4. 성경과목을 필수로 가르치며 채플을 보도록 한다.

5. 대학의 행정을 맡은 사람은 장로와 집사와 안수를 받은 목사로 한다.

 

이 원칙은 한국 선교회의 소망일 뿐 아니라 미국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또 아낌없이 이 대학의 건축과 운영에 봉헌한 기독교인들의 염원이기도 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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