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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 이야기 37
[[제1305호]  2012년 1월  14일]

4. 대학설립의 소명 ②

 

<2> 대전 기독학관

 

대학위원회는 7월 19일, 7월 26일, 그 후로도 수시로 모여 건축에 대한 회의를 했으나 미국 해외선교본부에서 이 일을 추진하라는 명령이 나지 않았다. 인돈은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계획대로 허락이 나지 않아 다음 해 봄에는 개교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무렵인 1954년 9월 16일에 미국 해외선교본부의 부레들리(Dr. Bradley) 박사로부터 허락을 알리는 전문이 왔다. 인돈은 다음 달 초 대구로 가서 계명대학을 살펴보았다. 계명대학은 그해 3월 20일 경상북도 지사의 인가로 계명기독학관을 영문과, 철학과의 두 과로 개관하고 있었다. 이어 인돈은 10월 26일 대학위원회를 소집하여 김기수를 정회원으로 임명하고 김형모와 김형남을 1년간 한국 측 자문위원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이 모임에서 학교 부지에 붙어 있는 과수원을 매입하기로 결의하고 11월 6일에 25,353평을 추가로 매입했다.

 

1955년 1월 27-28일에는 대학위원회를 전주에서 소집했고, 이 때 처음으로 한국 측 대표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광주 일신방직의 김형남 사장과 순천 매산고등학교 교장이었던 김형모 박사, 전주 신흥학교의 장평화 교장(바로 뒤에 대전 제일교회의 김만제 목사가 보강되었다)이었다. 대학은 10월에 개학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결의를 했다.

 

■대학명칭 : 대전대학(Taejon Presbyterian College)

■개학일시 : 1955년 10월 1일

■입학자격 : 세례교인일 것. 남장로교 선교지역 밖에서 오는 사람은 5% 이하가 되게 할 것.

■성적관리 : 학점은 A(93-100), B(86-92), C(76-85), D(70-75), E(60-70), F(60미만)로 하되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136학점으로 한다.

■도서관 : 듀이분류법 제15판을 구입하여 쓰기로 하되 국내도서 1,000불(50만환), 국외도서 1,000불(50만환), 도서관 장비 500불(25만환)을 배정한다.

 

이렇게 대학명칭을 대전장로교대학(Taejon Presbyterian College)으로 정한 것을 보면 미국의 정규 4년제 문리과 대학을 꿈꾸고 학교를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학점 분류 기준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현 대학의 학점 제도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였고 E학점을 재고 학점으로 정하고 한 번에 한하여 재시험을 보고 새로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하였다. F학점은 낙제 점수였다. 등급이 오늘 날 기준보다 하나 더 많은 셈이다. 듀이 10진 분류법으로 도서를 정리한다는 것은 미국 도서 분류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돈은 대학위원들에게 각각의 업무를 분담시켰다. 본인은 학교법인과 대학설립 인가 업무를 담당하고, 김기수는 교과 과정을 만들고 대전에 가서 개교식과 개강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시설과 설비를 담당하게 하였다. 구바울에게는 학교 건축 설계사를 구하는 일을 부탁했다.

 

인돈은 계속 그렇게 바쁘게 뛰었다. 그러나 4월말부터 지병이 또 악화되었고 지난 번 받았던 것과 똑같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국에는 그런 수술을 할만한 적절한 장비가 없었으므로 부인 인사례 여사와 함께 일본으로 가서 군인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전 선교부로부터 거주지를 대전으로 옮기라는 명이 있어 집을 비우기 위해 모든 짐은 전주의 기전학교 지하실에 맡긴 상태였다. 그곳에서 수술 경과는 좋아 6월 중순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사례 선교사는 인돈이 너무 바쁘게 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휴식을 주시기 위해 병원으로 입원 시켰다고 했는데 그들은 실제 오래 쉬지 못했다.

 

인돈은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자 바로 대학을 설립하는 일에 몰두했다. 대전에 적산 가옥을 사서 김기수가 먼저 옮기고 인돈은 전주와 대전을 오가며 일했다. 전주에서 대학위원회를 소집한 인돈은 6월 21일 월요일 저녁부터 22일 김기수가 만든 교과 과정을 놓고 하루 종일 토의했다. 7월 6일 수요일에는 대전에서 위원회를 열고 서울 세브란스 병원을 고쳐지었던 건축기사의 조언을 들었다. 그는 장로교 선교부의 일로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었다.

 

대전에 임시로 한옥을 하나 구해서 격주로 와있던 인돈은 모든 일을 조용하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처리해 나갔다. 그는 미국 앨라배마(Alabama)주에 있는 찰스 데이비스라는 건축기사를 초청해 학교 건물 설계를 맡겼다. 세계선교에 관심이 많으며 미국 남장로교회에서 장로로 있던 데이비스는 모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수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건축 양식과 재료들,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들을 판단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전에 와서 건물이 설 장소를 살펴보았다. 그런 뒤 그는 전주로 가서 기초설계를 하였다. 인돈은 그에게 전주의 옛날 자기 집을 내주고, 방해받지 않고 설계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2주 이상을 설계에 몰두했다. 조요섭은 자기 지프차로 그의 휴식을 위해 15마일쯤 떨어진 금산사로 그를 데려가기도 했다. 휴식을 위한 나들이였지만, 이는 그가 튼튼한 미국식 건물에 한국식 기와지붕을 올리는 설계를 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그의 설계는 벽돌 건물에 기와지붕의 건물이어서 후일에 이 건물을 두고 갓 쓰고 양복 입고 다니는 신사 꼴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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