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599호]  2018년 6월  23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기독교용어해설
성경어휘심층해설
성경난해구절해설
한국교회선교비화
선교기행
신앙소설
북한통신
성경동화
수필릴레이
그날까지
철학이야기
한국역사 그 뒷이야기
5분사색
장로열전
교회와 복지
역사의뒤안길
대인물열전
Home > 지난 연재물 > 신앙소설
인돈 이야기 38
[[제1306호]  2012년 1월  21일]

4. 대학설립의 소명 ③

 

<3> 대전 기독학관

 

미국의 전문 건축 설계사 데이비스의 설계는 1955년 9월 25일의 대학위원회에서 기초 조경계획, 기초 행정관 설계, 기초 기숙사 설계를 다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의하였다. 단 건축의 우선순위는 강의실, 남자 기숙사, 식당을 포함한 학생관 순으로 하였다. 이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자문위원을 포함해서 조요섭, 김기수, 구바울, 미철, 서의필, 유화례와 한국인으로는 김형모, 김만제였다. 대학 개강은 10월에서 다음해 4월로 부득이 연기되었다. 개학에 맞추어 정식 건물을 지을 수 없었으므로 군산 미군기지에서 잉여 물자를 받아오고 4개의 퀀셋 건물을 헐값으로 인수하여 교실과 도서관, 사무실 및 창고로 쓰기로 하였다.

 

인돈이 대전에 집을 짓고 완전히 이사한 것은 11월이 다 되어서였다. 이 집도 대학과 마찬가지로 지붕은 기와로 이은 한식을 겸한 구조였다. 인사례 부인은 기전 여학교의 교장으로 일본 신사가 있던 자리에 건물을 짓고 있었다. 여자고등학교 인가가 난 것이었다. 일본 신사가 있었던 아름다운 산등성이여서 경치가 좋았다. 여학생들은 기쁜 마음에 체육 시간을 이용하여 학교 밑을 흐르는 시냇가에서 자갈을 날라와 시멘트 건물을 짓는 것을 돕고 있었다. 인사례는 이 높은 건물이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건물이 완성되어 훌륭한 여성들이 훈련을 받아 기독교 어머니로 또 한국 교회의 여성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요람이 되기를 소원하였다. 후에 이 건물은 ‘인사례 기념관’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그 건물도 그때까지는 끝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인돈이 전주에 가면 기전학교의 건물을 감독하고 대전에 오면 대전대학의 건물을 감독하는 벅찬 일을 하고 있었다. 인사례 부인은 11월 대전으로 옮긴 뒤에도 후임이 오기까지 기전학교 교장직을 계속 맡아야만 했다(1956년 5월까지). 대학위원회는 대전과 전주에서 교대로 모이고 있었다. 또한 인돈은 대학설립 인가를 받기 위하여 문교부(이하 교육부)와 접촉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설은 대학 설치기준령에 너무 미달된 상태였다. 따라서 교육부는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에, 제반 시설을 갖추어 대학 설치기준령에 가까워질 때까지 잠정적으로나마 우선 대학에 준하는 4년제 학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도록 종용하였다.

 

1956년 1월 31일부터 2월 1일에 걸쳐 광주에서 모인 대학위원회는 제반 시설이 부족함을 자인하고 우선 교육부가 종용하는 대로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기로 하였다. 상기 위원회는 대전기독학관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입학하는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할 것이며, 그 안에 성문학과, 영문학과, 화학과의 3개 학과를 두기로 하였다. 계명기독학관이 영문과와 철학과밖에 없는데 대전기독학관이 이학계열의 화학과를 포함한 것은 이 나라가 과학으로 입국해야 한다는 인돈의 평소 교육 철학이 반영되어서였다. 인돈은 재단법인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유지재단 대표이사의 자격으로 1956년 2월 5일 교육부 장관에게 대전기독학관 설립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여, 그 해 3월 13일에 인가를 받았다. 이 설립 인가서는 충남 지사를 통해 남장로교 선교회에 전달되었다. 이렇게 하여 대전기독학관은 3개 학과에 360명의 정원을 가진 소규모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이름만 학관일 뿐, 입학 자격이나 학사내용이 대학과 같은 수준이고, 설치 기준도 대학설치 기준령에 준거한 학관으로 태어났다.

 

인돈은 설립 인가를 받자 곧 신입생 모집에 들어갔다. 사실 2월 5일 인가 신청과 동시에 일부에서는 입학사무를 비공식적으로나마 시작했다. 김기수와 함께 학관의 학칙과 교과과정 등을 작성한 전주의 박주황(후일 전북대학 총장), 황희영(후일 대전대학 부총장) 등은 불원간 학관의 설립 인가가 나올 것으로 확신하고 학관의 임시 연락처를 전주 신흥 고등학교에 두고 교회와 장로교 계통의 고등학교에 장학생 후보를 보내도록 통지를 하고 소속 교회 당회장의 추천을 받아 세례 증명서를 첨부하여 2월말까지 지원서를 제출케 하였다. 대전기독학관은 3월 2일 신흥학교 교장실에서 몇 명의 장학생을 서류전형으로 선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은 3월 26일 선발을 위한 입학원서 마감을 하고(교육부 허가 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입학시험을 치렀다.

 

입학을 지망한 학생들은 이 학관이 정규대학으로 인가가 난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대학위원들도 이 대전기독학관은 입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정규 대학으로 허가가 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와 같이 학교를 시작한 계명기독학관이 정규 대학으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가 받는 일을 서두른 덕분에 인돈은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해(1956년) 4월 9일 인돈이 대학 인가를 받고 기뻐하며 본국의 친구들에게 서둘러 보낸 편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개교기념식을 4월 10일 아침에 할 것입니다. 아마 해당 정부 기관의 관료들, 충청남도나 인접도의 고등학교 교장들, 그리고 대학 총장들이 참석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 교회나 강당이 없으므로 비가 오지 않으면 밖에서 입학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비가 온다면 인근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 대학을 새로운 장소에서 건물도 없이 시작했기에 처음에는 인가를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개교는 해야 합니다. 새 건물 건축은 되도록 빨리 시작해야겠습니다. 꽤 큰 한 동의 건물은 적어도 성탄일 전에 완공되기를 빕니다. 모든 건물과 장비가 다 갖추어지려면 여러 해가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대학이 시작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 속에 우리를 기억하시기를 빕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59. 초락도 금식 기도..
<94-총회총대5>
332. ‘기도합니다’와..
147. 철종의 가계도 ..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박래창 장로(전국장로회..
만평,만화
북한선교주일, 곧 보게 될 ‘그.....
거룩한 순교신앙 회복할 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