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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 이야기 39
[[제1307호]  2012년 2월  4일]

4. 대학설립의 소명 ④

 

<4> 대전기독학관

 

드디어 4월 10일 대전기독학관의 입학식을 겸한 개관식과 인돈의 관장 취임식이 열렸다. 식장에는 80여 명의 입학생과 7명의 전임 교원이 참석하였고 손님으로는 충청남도 지사와 대전 시장을 비롯한 내외 귀빈과 이자익(증경 총회장), 김만제(대전노회 직전회장) 등 교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식장은 미군 부대로부터 기증 받았거나 구입한 퀀셋 교사를 앞으로 하고 철제의자에 손님을 앉게 하였고 입학생들은 땅바닥에 합판을 깔고 앉게 하였으므로 대단히 어설픈 임시 가설 식장이었으나, 식에 참석한 200여 명의 인원은 모두 새로운 기독교 고등교육기관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과 학과의 미래에 대한 기대로 엄숙하였다.

 

개관식 및 취임식은 묵도와 찬송으로 시작했다. 대전제일장로교회의 성가대가 찬양을 한 다음, 대전제일교회 담임 목사요, 학관의 재단이사였던 김만제 목사의 설교가 있었다. 교학과장 황희영의 경과 및 학사 보고에 이어 인돈의 취임사와 신입생 대표 선서가 있었고 뒤이어 충청남도 지사의 축사와 신입생 대표 신인현의 인사가 있었다. 서무과장 김규동의 광고와 이자익 목사의 축도로 모든 식을 마쳤다. 6·25 전쟁의 혼란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때여서 모든 식전이 마치 개항기의 신학문 학당의 개교식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여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에 의해서 설립된 최초의 고등교육 기관인 대전기독학관이 첫출발하게 되었다.

 

입학식을 마친 뒤 인돈은 1956년 한해동안 건물 짓는 일과 대학의 정식 인가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으며, 그해 11월 19일과 20일에 사택에서 대학위원회를 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식 대학 인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 위원회에서는 4개의 학과로 구성되는 4년제 정규대학의 인가 신청을 정식으로 충청남도 지사를 거쳐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하기로 하였다. 인돈은 기독학관 서무과장이던 김규동에게 이 문서를 작성하게 하여 12월 23일 제출했으나, 이듬해 1월 23일 교육부로부터 시설 미비로 대학설립이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정식 대학의 학생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기독학관 학생을 모집하였으나 정규대학의 정식인가가 나지 않아 인돈은 초조했고, 5월까지는 교지와 체육장을 정비할 것이며 본관 공사를 마치겠다는 답변서를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하였으나, 지연되어 이듬해 4월에 헌당식을 하게 되었다.

 

인돈은 이 분주한 가운데도 학장으로 취임하기 위해서는 학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1957년 미시시피 주 잭슨에 있는 벨해븐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다각도로 교육부 관리들과 접촉하도록 재단이사 라빈선(Robinson, Robert K.)과 김형남(일신방직 주식회사 사장), 백낙준(연세대 총장), 김활란(이화여대 총장), 임영신(중앙대 총장) 등을 동원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인돈은 본국의 해외 선교본부에 부탁하여 이 일을 위해 특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드디어 선교본부는 1958년 10월 로이 리크로우(Colonel Roy LeCraw) 예비역 공군 대령을 특사로 파견했다.

 

인돈은 다섯 번째 안식년을 맞아 한국을 비웠다. 그러나 안식년 동안에도 그는 미국 내에서 안식년의 전반부를 주로 대전대학(현 한남대학교) 일과, 미국 내의 교회 방문의 일로 보냈다. 지금의 기독학관은 임시로 인정을 받은 대학이기 때문에 정식 4년제 대학으로 인정을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마침 리크로우가 한국 전쟁 당시 제5공군 부사령관이었던 만큼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에 영향력이 컸고, 본인이 장로 직분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라서 대학 인가 받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그는 한국에 오자 라빈선, 김형남, 김기수 등의 협력을 얻어 교육부 교섭활동을 전개했으며 김형남과 함께 교육부 장관 최재우를 만나 대전대학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설명하고 아울러 대학 설립을 위한 시설 확충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고하였다. 기독교인이자 세브란스 의과대학 출신 의사이기도 한 최 장관은 대학 설립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고 설립 인가 문제를 1959년 1월에 모이는 중앙교육위원회에 상정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리크로우는 미국에 있는 해외 선교부 브레들리 박사에게 대전대학 설립활동 보고를 하면서 최재우 장관에게 보낸 사신을 동봉했는데 그 사신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1)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대전대학의 건축 추가기금으로 4만 불, 기자재와 실험기구 추가기금 등으로 1만 불을 보내겠으며 경험이 있고 유능한 교수요원을 추가로 파견하며, 빠른 시일 안에 도서관을 보강하도록 노력하겠다.

2) 미국의 80만 남장로 교인들은 대전대학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으며 대전대학을 위해 이미 상당한 노력을 경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폐쇄되어버린다면 매우 크게 실망할 것이란 점을 환기시켜드린다.

3) 많은 사람들이 최 장관께, 이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 당신의 힘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힘써 주시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믿고 있다.

이런 노력의 열매였는지 1959년 1월 최재우 교육부 장관은 약속대로 중앙교육위원회 대전대학의 설립 인가건을 상정하여 승인받았다. 그리하여 최 장관은 정식으로 대전대학의 설립 인가를 했다.

 

본국에서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인돈은 평생의 소원이던 정규 대학 인가를 받은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인 3월 11일 다시 급한 전화를 받았다. 당시 인돈은 68세였는데, 65세를 기준으로 한 공직자 정년 제도에 걸려 그는 학장에 임명될 수 없으며 대학의 장이 없으면 대학 허가 조건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오승재 장로<한남대 명예교수·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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