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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지도 여행
[[제1381호]  2013년 9월  7일]

지도(地圖)는 한 폭의 풍경화다. 거기에는 강이 있고, 산이 있고, 들이 있다. 마을이 있고, 도시가 있고, 곧게 뻗은 고속도로와,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 있다. 가을의 곱게 물든 단풍과, 겨울의 하얗게 눈 덮인 산도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지도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순간 나는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여행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세상사 온갖 일에 시달리다가도 모두 훌훌 떨쳐버리고 미련 없이 떠나는 여행. 잠시라도 홀가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여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 경비도 경비려니와, 이런 일 저런 일로 얽매이다 보면 좀처럼 시간을 내어 떠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지도를 본다. 그리고 지도 여행을 한다. 넘실대는 푸른 대양(大洋) 위를 호화 여객선을 타고 달려보기도 하고, 적도의 밀림 속에서 토인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기도 한다. 알프스의 산과 에베레스트산을 그려보면서 그 정상에 올라가 그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스위스와 눈 덮인 티벳의 조그마한 마을들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또 머리 위로 끝없이 뻗어나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스스로 느껴보기도 한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문명인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지구의 어느 구석 오지(奧地)를 지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여인들의 수줍어하는 순박한 미소를 훔쳐보기도 한다. 북극의 곰과, 에스키모와, 남극의 귀여운 펭귄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지도는 하나의 역사(歷史)다. 옛날의 어느 도시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가를 배우게 한다. 인간사(人間事)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무상감을 배우게 한다. 안데스 산맥의 고원에서 원주민들과 같이 지내면서 잉카의 문명을 배운다. 나일강을 지나면서 피라미드 속에서 미라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 제국의 문명 속을 거닐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라인강에 배를 띄워 저어가면서 로렐라이 언덕의 노래를 들어보기도 한다.

몇 차례 외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은 주로 패키지로 다녀왔기 때문에 구석구석을 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게 했다. 지도 여행만 못한 것이다. 지도 여행은 참으로 즐겁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잠시 시간을 내어 지도를 펴놓고 보면, 불과 몇 분 안에 전 세계를 구석구석까지 안 가본 데 없이 모두 여행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복잡했던 내 머리는 금방 정리되고, 순간 꿈과 낭만이 있는 동화의 나라로 인도되면서 미지(未知)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한다. 또 나로 하여금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과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이런 나라들을 실제로 하나하나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 주면서….

 

엄원용 목사<수필가·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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