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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눈 내리는 밤에
[[제1399호]  2014년 1월  25일]

찬바람에 목덜미가 싸늘하다. 벨소리에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서니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쌓여서 발이 빠진다. 좀 전에 들어온 아내의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너무 아름다워 내 발자국을 덮쳐 찍으며 걸어갔다. 대문을 열고 보니 눈은 길에도 수북이 쌓였고 지붕에도 쌓였다. 내 마음에도 쌓였다.

눈이 내린 오후, 홀로 걷고 싶어 집을 훌쩍 나섰다. 도시의 때 묻은 먼지를 씻어주는 눈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신탄진행 버스를 탔다. 얼마쯤 가다가 내렸다. 오로지 발길이 이끄는 대로 정결한 눈길에 발자국을 놓아가며 걸었다. 산모퉁이 지나서 눈발 속에 묻힌 고갯마루에 있는 성황당을 보니 잊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돌을 한두 개 던지며 갔는데 무엇이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만 같아 고무신짝을 벗어 들고 줄행랑을 쳤다. 그때 함께 다니던 아득히 잊었던 고향 친구 이름들을 입안에 굴리며 눈길을 걸어서 산 고개를 하나 넘었다.

눈보라 속 겨울을 견뎌내는 잔솔가지에 핀 새하얀 눈꽃이 발길을 불러 세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화려한 꽃이 피련만, 지금 가까이 보는 눈꽃이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영원히 싫증이 나지 않는 눈꽃은 내게 속삭인다. 저 눈빛과 같이 맑은 영혼으로 살라고…. 눈빛처럼 지순하고 은은했으면 좋겠다며 내 마음을 다스려 본다. 산을 내려오는 오솔길은 눈 속에 묻혀서 손금처럼 좁다랗게 보이며,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와 눈송이, 눈에 들어오는 나무와 들풀 모두는 내 사유(思惟)의 공원에서 은전(恩典)이 아닌 것이 없다. 겨울이면 어머님 따라 여길 와서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청솔가지 나무를 하던 산을 바라보니, 산은 나를 따뜻이 품어준다. 나뭇가지를 묶은 다발을 머리에 이고 가시면서 “길이 미끄럽다.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가라” 하시는 그 한 마디 말씀이 들려오는 듯, 눈물로 마음을 씻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산촌의 정경이 아름다워 한 폭의 수묵화 같은 고향 나 살던 집을 지나며 마침 눈을 쓸고 있는 아낙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니 찾아온 나그네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며 안내를 해줌에 그리로 갔다. 감회에 젖어 바라본 뒷산의 나무들이 우람하다. 그 나무들은 잘 생긴 나무가 아니면서 왜 그런지 눈물겹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한참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들여다보니, 옛적에 보던 절구통이 있었다. 내 생일이면 어머님이 떡을 하시던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절구통에서 쌀을 빻는 소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데 그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엔 어김없이 메주를 쑤어 방안은 따뜻하기만 했다. 화롯불에 둘러앉아 감자를 구워 먹던 날이었다. 까만 입술을 하고서도 맛이 있었던지 옆 사람은 못 본 채 정신을 빼앗기던 그때를 떠올려 보며 그 방에 다시 앉으니 방안은 아직도 식지 않은 듯하다.

녹차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깊은 상념에 젖는다. 가난은 했지만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던 마음을 간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오면서도 그때의 그리움에 허기를 느꼈다.

이 밤에 눈 내린 하얀 세상이 어른거린다.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미움과 증오, 아픔과 괴로움을 저 눈 속에 덮고서 더 멀리 세상을 내다보며 넓은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눌 줄 아는 ‘하늘 그림’을 그려본다.

 

한오 장로<장로문인회 부회장·청주 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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