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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우보 천리(牛步千里)
[[제1403호]  2014년 3월  1일]

새해 벽두에 친구로부터 연하장을 하나 받았다. 반가워 펴보니 ‘건강의 복과 가정의 행복’을 빈다는 내용이었다. 붓으로 정성을 다해 쓴 것이 역력하다. 고마웠다.

내용을 읽고 나니 다시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었다. 연하장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농부가 소를 몰고 들로 나가는 그림이었다. 소는 농부 앞에서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그 뒤로 농부가 지게를 지고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牛步千里’란 글귀가 세로로 씌어져 있었다. ‘느린 소걸음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축들이 있지만 소만큼 주인에게 충실한 짐승도 없다.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하는 동물이다. 어떻게 보면 미련해서 그런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격이 유순하고 충직하기 때문인 것이다. 짐을 나르거나 일터로 나갈 때나 언제든지 그저 뚜벅뚜벅 한 발 한 발 조용히 걸어만 가는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동물이다. 꼭 군자(君子)의 걸음이다. 소의 걸음이 느리다 해도 한 번 내디디면 십 리든 백 리든 말없이 간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고 내일도 다 못가면 모레 다시 가는 것이 소다. 그 느린 소걸음이 천리를 가는 것이다. 그 걸음으로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지어왔다. 그리고 때로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며 생계를 위해 생사고락을 같이 해왔다.

이 소 그림을 보면서 나는 다시 요즈음 우리의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너무 조급하다. 생각하는 것도 급하고, 일하는 것도 급하고. 심지어 밥 먹는 것까지 급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라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빨리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요즈음 경제가 말이 아니다. 모두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동안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왜 이런 결과가 왔는가? 왜 이렇게 모두 아우성일까? 이것을 보면 빨리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뛰고 또 뛰면서 허겁지겁 달려온 오늘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여유’다.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질 때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여유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요즈음 국가를 평가할 때 국민소득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행복지수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탄이라는 나라는 크기도 작고, 잘 살지도 못하지만 행복지수가 제일 높다고 한다.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소의 걸음걸이를 배워야 할 때다. 성실과 끈기로 힘을 다하여 천리를 간다면 그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정월 초사흘 연하장을 받고 나서 올해만은 나도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지혜를 배워 여유 있는 한 해를 보내리라 생각해 본다.

 

엄원용 목사<수필가·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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