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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입춘, 푸른 보리밭을 생각하며
[[제1404호]  2014년 3월  8일]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지 않으리.’ 시인 셀리(P. B. Shelley)의 시구처럼 봄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으로 청마해 입춘을 맞이하였는데 날씨는 올겨울 가장 추운 날 같다. 매서운 바람과 폭설로 생활에 불편을 주는 겨울이어야 꽃피는 봄이 반갑고 아름다운 줄 알았지만 금년은 설 명절 전후하여 따뜻한 날이 길게 계속되어 정말 봄이 성큼 다가온 줄 알았으니 그 추위는 혹독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추위로 봄이 더 기다려지고 아름답게 보일 것으로 믿어 겨울잠에서 깨어나 소망스런 입춘을 맞이하고 싶었고, 그 느낌으로 어깨를 펴고 활기차게 살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욕으로 겨울 눈 속에서도 파랗게 버틴 보리밭을 생각하며 박화목 시, 윤용하 곡 ‘보리밭’ 노래를 흥얼거리며 배고파했던 시절의 풍경마저 생각하였다.

사실이야,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지만 봄이 다가왔음을 지인들에게 먼저 알리고 눈 쌓인 겨울도 씩씩하게 잘 넘기는 보리밭 풍경을 기억하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도 도사렸다. “인동초가 바로 보리야”라고 하시던 어른들의 이야기도 함께 되새겨본 것이다. 그 보리가 힘들었던 춘궁기 때 조급하게 익어주기를 기다린 귀한 양식이었고 봄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한 서양 이야기보다. “보릿고개를 모르고 우리 민족의 애환과 역사를 안다고 하지 말라”는 뜻을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시인 한하운은 자신의 지병 때문에 소록도를 가면서 “보리피리”란 시 한 수를 읊었을까.

그럼에도 보리로 인한 속담도 더러 있다. “보리방아 물 부어 놓으니 시어머니 생각난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않는다.” 모두 권태로운 일상과 천대와 괄시를 상징하였다. 보리는 귀한 양식이면서도 이토록 푸대접을 받았다. 보리밭은 봄바람 불면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가 되고 활력이 넘치는 파도를 연상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그러듯 옳은 길이라면 인동초처럼 인내하고 혹한 추위 같은 고난을 이겨내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칼바람 부는 밤에도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걷고, 또 누가 무슨 유혹이나 압력을 가하여도 푸르게 사는 사람, 누가 겉 사람으로 판단해도 하나님의 성품처럼 속사람으로 곱게 대하는 사람, 신사참배반대가 고난과 죽음의 길이라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 이분들을 보리, 이들의 모임을 혹은, 교회를 겨울 보리밭에 비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귀하게 보지 않고, 아쉽고 필요할 때만 찾고, 형편이 달라지면 내치는 것이 상식인 세태에 살고 있음은 우리의 슬픔이다. 해 지면 일손 멈추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에 하루를 감사하는 만종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과 대학 뿐 아니라 이웃을 위해 축복하는 삶을 펼치는 풍토이다. 그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땀 흘려 일하다 일몰 시간에 차임벨을 울린다면 그 소리에 푸른 보리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감사하며 희망의 찬가를 부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김광영 장로<한국장로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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