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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유관순 순국열사
[[제1563호]  2017년 9월  2일]

유관순(柳寬順, 1904-1920) 열사는 충청남도 천안군 목천면 용두리 지령부락에서 아버지 유중균(柳重權) 어머니 이소재(李小悌) 4남매 둘째 딸로 출생하였다.

유관순의 집안은 지령부락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의 가문이었는데 아버지 유중권은 지방에서 가장 먼저 개화사상을 받아들여 지역 발전을 위해서 교육기관인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갖고 이정래, 강대형, 이재필, 이춘범, 한우석 등과 함께 힘을 모아 흥호학교(興湖學校) 설립하고 신교육에 투신을 하였으나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행패와 학교 부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은 구국의 방법과 신념이 기독교에 있음을 깨닫고 조인원, 유빈기와 함께 예배당을 중심해서 민중계몽운동에 힘을 쏟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정에서 자란 유관순은 유년 시절부터 교회학교에서 모범을 나타내었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유관순은 당시 공주 천안지방 순회선교사였던 샤프(A. H. Sharp, 한국명은 사애리시(史愛理施)) 선교사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보통과 과정을 수료한 유관순은 1918 4월에 고등과 1학년에 입학하였다. 이때 유관순은 입학식 학교 강당에서 모여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 찬송가에 은혜를 받아 일생을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힘을 쏟겠다고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그가 은혜를 받았다는 찬송가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 / 동산에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 이날에 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2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 / 돌아와 갈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이날에 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3 : 생략

후렴 : 일하러 가세 일하러 삼천이 강산 위해 /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유관순은 고등과 2학년 초기에 3.1운동을 맞이하였다. 당시 이화학당 내에는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회 단체인 <이문회=以文會> 있었다. 학생을 동원하려면 항상 학생운동의 동원 책임자인 박희도가 있었다. 이때 박희도는 책임자의 요청에 따라 3 1일을 기해 대한문 앞에 나가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를 하였다.

이화학당의 책임자인 선교사인 프라이드와 서양인 선교사들은 이를 만류하였지만 유관순은 동료들과 같이 이를 뿌리치고 학교 기숙사 뒷담을 넘어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으로 달려가 만세시위에 참여를 하였다. 또한 3 5 서울 지역 학생연합시위에 참여하여대한독립만세 부르다가 체포당하였으며, 이때 일본 경찰관의 심한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석방을 받게 되었다. 얼마 후인 3 10 조선 총독부의 휴교령에 따라 유관순은 고향인 충청도 목천으로 내려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유관순은 고향으로 내려가 그가 출석하고 있던  매봉교회 교인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부친 유중권과 삼촌 유중무, 오빠 유우석, 같은 서울 이화여학교 동창이자 사촌언니인 유예도, 유증권, 유빈기 등과 함께 홍호학교를 세웠던 조인원, 조병호 부자 등이 매봉교회의 주축 교인이자 만세운동을 준비한 지도자들이었다. 유관순은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한밤중에 험준한 산골길을 오르내리며 고향인 지령리 일대와 연기, 청주, 진천 지방까지 왕래하며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만세시위 일자는 4 1 아우내 장날로 정했으며, 그날 천안, 안성, 진천, 청주, 연기, 목천 6 지방에서 모여든 3천여 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조인원의 독립선언 낭독에 이어 유관순의 독립 연설이 있은 시위에 들어갔다. 이때 유관순의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여든 청중들은 목소리로대한독립 만세 부르면서 아우내장터를 만세소리로 가득 메웠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일제는 곧바로 헌병대를 동원하여 군중을 향하여 발포하며 진압을 하였지만 군중들은 이에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불렀다.

만세운동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유관순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공주 검사국으로 넘겨졌으며, 공주 영명학교 대표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온 오빠 유우석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경성복심법원에서 3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던 죄수들과 함께 1920 3 1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시위를  벌였다. 사건으로 심한 매질과 고문을 당했고 결국 병을 얻어 1920 10 12 옥사(獄死)하였다. 1962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공로단장을 추서하였으며, 1966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유관순의 고향인 지령리에 유관순기념교회를 세우고 1974 유관순기념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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