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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기독교 문화운동에 기여한 소설가 방인근
[[제1569호]  2017년 10월  28일]

방인근(方仁根, 1899-1975) 소설가는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금오산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에 한문 사숙에서 천자문을 다 떼었으며, 부모의 권유로 상경하여 당시 미션학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 입학을 하였다. 이때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시험에 응시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에  학교 게시판에 방인근이란 세 글자가 써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에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를 이 학교에 입학하던 날부터 열심히 불렀는데 그 찬송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시리

2 : 정한 보배 빛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거두시리 (3절은 생략)

후렴 :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 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방인근은 191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의 유명한 미션학교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에 지원하여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 후 아오야마학원 중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도쿄(東京)에 있는 중앙대학교 독일어과에 진학을 하였다열심히 공부했던 결과로 4년간의 수업을 이수하고 도쿄 중앙대학교 독일어과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1924 10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종합 문예월간지(文藝月刊誌) <조선문단=朝鮮文壇>을 창간하였으며, 그는 문단 초년생이었지만 춘원 이광수에게 편집 주간을 맡겼다. 국판 69면의 창간호(創刊號)에 주요한, 정태연 등의 시와 이광수, 전영택, 방인근, 최서해의 소설, 그리고 주요한, 이광수 등의 논문이 실리기도 하였다.

문예월간지 4호부터는 方仁根의 이름으로 발행을 하였으며, 1926 6 1일 통권 17호를 발간하고 휴간을 하였다. 그 후 1927 1월에 다시 속간을 하였으나 곧 휴간을 하고 말았다. 휴간하였던 <조선문단> 1935년 이학인에 의해 재차 복간되었다. 그러나 1935 12월 통권 26호로서 종간되고 말았다. <조선문단>은 지금까지 동인지 성격을 벗어나 기업적으로 운영하는 <문예지>라는 특징이 있었으며, 같은 해 계급주의(프로문학)적 경향을 띠고 창간된 <개벽=開闢)>의 박영희, 김기진 등에 맞서 민족문학의 순수성을 제창한 것으로서 의의가 컸다. 이 문예지를 통해 활동했던 문인으로는 이광수를 비롯하여 방인근, 김동인, 염상섭, 나도향, 김 억, 주요한, 전영택, 현진건, 박종화, 김소월, 이상화, 양주동 등 당시의 문단인 거의가 참가를 하였으며, 최초의 <신인 등용 추천제>를 실시하여 최서해, 채만식, 박화성, 임영빈, 계용묵 등의 소설가와 조운, 이은상, 유도순 등의 시인이 신인 추천을 통해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한편 잡지 창간 이후 몇 해 전만 해도 전 재산을 탕진했던 그는 1927년 평안북도 영변에 소재한 기독교 미션스쿨인 숭덕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다시 상경하였고 얼마동안 생활을 하다가 1929 5월 평양에서 그가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고 양조동이 주재하여 순 문예월간지인 162면 국판 <문예공론>을 창간하였다. 창간호부터 일제()의 검열로 고초를 당하여 김기진의 <프로문예의 대중화>는 검열에서 삭제되어 제목만 실리게 되었다. 당시 민족주의 문학의 의견을 대변한 염상섭의 논문 <문학상의 집단의식과 개인의식>과 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이은상의 시조, 김억, 박종화, 김소월, 이장희, 양주동의 시, 한설야, 염상섭, 최독견의 소설이 실렸다.

1925년 이후 계속되어 온 <개벽>, <조선지광> 중심의 사회주의 문학과 <조선문단> 중심의 민족주의문학 사이의 대립을 양주동과 염상섭의 절충주의로써 수습하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1929 6 10일에 간행된 제2호에는 김기진, 한설야, 양주동, 문일평의 평론과 김동인의 장편인 <태평행=太平行> 1, 한설야, 이태준의 소설과 많은 신인들의 추천시 입선시가 특집으로 꾸며졌다. 같은 해 7월에 간행된 제3호에는 현진건, 전영택의 소설, 방인근의 희곡, 김소월의 시 <단장=斷章> 등이 특기할 만한 내용이었으며, 이로써 종간되었다. 이후 <신생=新生>의 편집부장(1931), <시조=時兆>의 편집국장(1935), 방송국 촉탁위원(1943)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대에는 차차 대중작가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기독교적 색채를 떠나기 시작했고, 1933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괴청년>이 불온사상 혐의로 일제에 의해 중단된 일도 있었다. 한편 그는 일제 말기 친일문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으로 참가도 하였다.

비록 그가 수준 높은 작품으로 화제에 오른 적은 없으나 대중소설의 저변 확대와 <조선 문단> 등을 통해 문학사에 끼친 공헌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한편 1920년대에 이미 기독교 문화운동에 시선을 모았다는 것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역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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