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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8호]  2017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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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를 바라보며
[[제1567호]  2017년 10월  14일]


초가을에 접어들어 여기저기 붉게 피어 있는 배롱나무 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10월에 열매를 맺을 때까지 두어 달 동안 피고 지고 땅에 떨어지면서 그 자태를 이어가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꽃만 아니고 매끄러운 연보라색 줄기도 여름 내내 거죽이 조금씩 벗겨지고 다시 덮여 나무에 수려한 모습을 더한다. 이 땅에서 살아온 것이 여러 백 년일 터인데 요 근년에 들어와서 부쩍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무슨 까닭인지.

최근 캘리포니아 지역을 돌아다닐 때 곳곳에 우리네 배롱나무 비슷한 꽃나무들이 많기에 알아보니 Crape Myrtle이라는 이름으로 남가주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꽃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어찌 미 대륙에 심겨졌는지 알 수 없으나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지에 자생해온 것으로 추위에는 약한 편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경기 남부 아래 쪽에서 자란다.

꽃이 피는 기간이 길어 원래 으로 불리던 것이배롱’으로 음이 변화되었다는 설명도 있는데 초본식물인 또 다른 백일홍과 글자 만으로는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부귀’라는 꽃말을 달고 동양의 품위와 서양의 화려함을 지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꽃나무, 드물게 큰 키로 아파트 단지와 공원 곳곳에 서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한여름 내내 담장과 가로변을 수놓던 능소화도 자취를 감추고 이젠 코스모스, 해바라기, 국화의 계절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단연 배롱나무의 빨간 꽃송이에 멈춘다.

경기도 광주 앵자봉 기슭에 아담한 목조주택을 짓고 사는 가까운 친구가 역시 배롱나무를 좋아해 두 그루를 심었는데 올 봄을 넘기지 못하고 한 그루가 죽었다고 서운해 했다. 홍천에 배롱나무를 심어 잘 자라고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또 강릉 최씨 고택에 당당히 서 있는 100년 된 배롱나무 사진을 보고 자신을 얻어 정성을 들였는데 그리 됐다고 하면서 그래도 우리나라 배롱나무 분포가 북상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고 이 또한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는 견해를 밝혔다.

과연 그렇구나, 그래서 배롱나무 꽃의 열정적인 색채가 해마다 더 널리 이 땅의 초가을 날을 빛내주고 있구나 하는 감탄이 솟았다. 인류의 장래를 불안하게 하는 온실가스 문제가 의외로 이런 효과도 가져온다니. 그러고 보니 북상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고 대나무, 감나무의 서식 前線도 위도를 차츰 올려가고 있고, 바다 어족들의 분포도 영향을 받아 동해에서만 잡히던 대구가 서해에서 대량으로 잡히며 어떤 철새는 방향을 상실해 미아가 되었다는 전문가의 보고도 나왔다.

하필이면 배롱나무 꽃가지를 꺾어 들고 나온 듯이 평양의 무슨 광장이 온통 빨간 색 造花로 뒤덮인 모습이 요즘 텔레비전 화면에 이따금 비친다. 장거리 미사일과 핵폭탄 실험 성공을 경축하는 광경이다. 목청을 다해 구호를 외치며 종이 꽃을 흔들어 대는 그들의 머리에 얼마만큼 진정한 인간성이 남아있어 헛된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추구할 능력이 있을까, 언제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가치, 자유와 행복이 따스한 대기처럼 북상하여 이들을 어둠 속의 미망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창문 밖의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김명식 장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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