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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
[[제1571호]  2017년 11월  11일]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사계절의 복을 타고난 우리네는 이제 연중 가장 쾌적한 때를 보낸다. 하늘은 맑고 땅은 채색을 바꾸고 바람은 살결을 가볍게 건드린다. 우리의 마음은 감사로 채워진다.

가을에 사람들은 더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종교적으로 된다. 봄에 찾아온 에로스가 가을에 결실을 맺기도, 떠나가기도 한다. 가을에 대기는 차가워지지만 감사의 온기가 흐른다. 맛있는 나물에서 감사가 시작되면 그 마음은 아내의 신비한 손길로, 야채가게의 인심 좋은 아주머니로, 땀 흘려 재배한 농부에게로, 햇볕과 비를 내린 하나님께로 이어진다.(전광 목사의평생감사’에서 따옴.)

가을에는 장편소설을 읽고 교향악을 듣는다. 역사책을 펼쳐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기에 좋다. 물론 성경 통독에도 더욱 적합하다. 봄의 환희, 여름의 열기와 피곤을 지나 내 몸 밖의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편안하다. 얼마 지나면 단풍잎들마저 다 떨어져 땅 위에 눕고 후회와 탄식의 겨울이 오고 또 우리는 봄을 기다리며 산다.

그런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평형상태는 좀 불안하다. 삶이 체온과 바깥 기온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일교차를 말하고 거리에는 파카와 반소매가 공존하고 젊은이들은 아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투명한 용기에 담아 거닌다. 가을의 시계는 빨리 가기도 천천히 가기도 하기에 가을이 꼭 9, 10, 11월 석 달이어야만 하는가 생각하다가, 어느 날 아침 우리는 가버린 계절을 깨닫고 시인을 닮아 슬픔에 잠길 것이다.

가을은 평화의 시간이다. 오늘도 평화 속에 가을을 지내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평화를 의식하는 것은 그만큼 위협이 있다는 반증인데 이 맑은 하늘이 포연으로 뒤덮이고 땅 위의 모든 것이 불타고 생명이 끊어지는 전쟁의 장면들은 제발 영화 속에나 남아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현실로 가져오고자 하는 자들을 증오할 권리가 내게 있다. 평화는 이제 벼베기가 끝나고 하얀 색 검은색 비닐에 싸여 들판에 놓여 있는 커다란 볏짚덩어리들에 깃들어 있고 유모차 안에서 무엇을 안다고 방긋 웃는 아기의 얼굴에 담겨있다.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 축제에도 있고 남녀노소 고객들이 너른 매장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교보문고에도 평화가 있다.

왜 아름다운 가을을 생각하다가 불안한 평화를 말하는가. 추수를 지난 가을의 고요와 여유에도 눈보라 치는 겨울을 앞둔 우려가 있기 때문인가. 60여 년 계속된 평화 속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려온 이 땅이 북쪽의 가증한 정권의 존재로 인하여 긴장이 더해지고 있다. 이 가을에 우리는 조락의 계절의 쓸쓸함에 잠기는 대신 감사와 사랑을 충전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실현한 승리자의 자신감을 넉넉히 유지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정적이 길어지는 가을은 기도의 시간이다. 자연이 베풀어 주는 심오한 정서는 우리의 기도를 더욱 간절하게 한다. 산이든지 바다든지 들판의 농로 한가운데든지 서서 맑은 하늘을 향해 그곳에 계시는 우주의 통치자를 향해 나의 소망을 외친다. 이 평화를 감사하오니 내내 이 땅을 떠나지 않게 지켜주소서. 믿음으로 평화를 지키는 우리 백성들의 가슴이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케 하소서

김명식 장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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