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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제1576호]  2017년 12월  23일]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는 크리스천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하얀 눈은 소리 없이 내리기에 어머니의 사랑처럼 포근한데 땅에 이르러 쌓이면 사람의 발이 닿을 때 고운 소리를 낸다. 혼자 걸어도, 정다운 이와 둘이 걸어도 또 어렸을 때처럼 여럿이서 눈을 모아 마주 뿌리며 장난을 쳐도 마냥 즐겁다.

함박눈이 내리면 출애굽 시대의 만나를 상상하게도 되는데 바람을 타고 흩날리기도 하지만 눈은 대체로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기에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다. 머리에, 어깨에 그리고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 앉는다. 볼에 닿으면 선뜻한 감각이 상쾌하다.

눈은 6각의 결정체인데 확대한 사진을 보면 세부의 모습이 현란하고 다양하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은 크건 작건 완전한 球形인데 어찌해서 저온에 고체화되어 하늘에서 내려오노라면 이처럼 신비한 형상으로 변화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구름은 우박이 되어 세상에 피해를 주고 또 어떤 구름은 눈이 되어 그것도 크리스마스 저녁 도시에도 내리고 시골에도 내려 세상사람들을 모두 기쁘게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오래 전 전쟁 때, 수복 후 첫 겨울 성탄절 저녁, 동네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멀지 않은 비탈길을 올라 성탄예배를 드리는 교회 구경을 갔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있다. 달밤이었는지 눈이 내렸는지는 모르겠는데 좁은 예배당에 사람들이 가득히 앉아있고 석유등을 밝힌 가운데 그 앞에서 젊은 사람들이 무슨 연극 같은 것을 하며 노래도 부르고 했다. 나중의 기억으로 그 교회 목사님은 공산당에게 죽임을 당하셨다고 했으니 그날 성탄예배는 슬픔 가운데 진행됐을 것이다.

예수의 나심이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이며 그런 까닭에 성탄절이 기쁜 날임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서였으니 참으로 많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 셈이다. 그런 불신앙의 시기에도 크리스마스에는 무언가 선하고 즐거운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곤 했다. 새벽송을 도는 소리가 들려오면 혹 내 집 앞에도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도 하면서.

70년대 후반에 들어 교회에 다니게 되어서야 크리스마스는 남들의 명절이 아닌 나의 명절이 되었다. 어느 부목사님 댁에서 크리스마스이브 모임을 갖고철야’한 후 바로 성탄절 새벽예배에 가보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행사로 교우들과 친교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예전의 나처럼 믿음도 없이 성탄절이라고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측은해 보이는 그런 교만을 맛보기도 했다.

성탄절의 여러 가지 아이콘들, 산타 클로스, 징글벨 노래, 크리스마스트리, 하늘을 나는 썰매는 6.25전쟁과 더불어 이 땅에 찾아 들어와 오늘에도 크리스마스의무드’를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정서에 일으키는 감흥은 예전처럼 진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의 표상이다. 이날에 우리의 가슴은 모든 방향으로의 선의, 멀든 가깝든 내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사랑을 느끼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눈이 내리는 밤 이 사랑이 온 세상을 따뜻이 덮어준다

김명식 장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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