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02호]  2018년 7월  14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사설
시론/논단
종로광장
야긴과보이스
장로발언대
오피니언리더
금주의기도
데스크창
만평,만화
Home > 오피니언> 데스크창
미•영의 군대들
[[제1587호]  2018년 3월  24일]

1941 미국의 케네디는 하버드 법과대학원 재학 육군 장교 후보생 시험과 해군장교 후보생 시험에서 잇따라 낙방을 하였다. 그는 억만장자 아버지에게 애절한 편지를 썼고 아버지는 정계와 () 인맥을 움직여 아들을 해군에 집어넣었다. 모두가 2 대전에 참전하는데 국민 대열에서 낙오하게 되면 장래 나라의 지도자는 커녕 어떤 공직에도 없는 것이 당시 미국의 도덕률이었다. 이렇게 해군에 들어가 훗날 남태평양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그는 평생 진통제와 각성제의 힘으로 살아나갔다.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장님과 마찬가지인 지독한 근시였다. 그런 그가 1 세계대전에 포병대위로 프랑스에서 싸웠다. 시력 검사표를 달달 외워서 신체검사를 통과한 덕분이다. 케네디와 트루먼은 어수룩하게 보이는 미국이 사실은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1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1916 6 영국군은 프랑스 북부 솜강() 지역 전투에 25 사단을 투입했다. 돌격명령과 함께 영국 젊은 병사들은 40kg 가까운 군장을 짊어지고 독일군 기관총 총구를 향해 몸을 드러낸 진흙탕을 달려 나갔다. 소대와 분대의 앞장을 것은 귀족 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젊은 소위들이었다. 전투 첫날 7만여 명의 영국군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50년대에 차례로 영국 총리를 지낸 애트리 이든 맥밀런이 이런 지옥과 같은 전투의 생존자들이었다.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대학에 복학했으나 함께 전쟁에 나갔던 학우의 1/3 끝내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50 이하 영국 귀족의 20% 1차대전에서 전사했다. 귀족과 명문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노동자, 농민보다 많았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 제임스 루스벨트는 2 대전 해병 2기습대대에서 복무 마퀸제도의 일본군 기지를 기습하는 매우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작전에서 제외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인즉 만약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일본군 포로가 되거나 전사하면 일본군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전쟁에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은 모두 2 대전에 참전하였다.

6.25한국전쟁에서 139명의 미군 장성의 자제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한국전쟁 미군의 사망자는 33686, 포로 실종 8176, 부상자는 92134명이었다. 하버드대학 졸업생 17명이 한국전선에서 전사하였다. 한국의 안보가 뒤숭숭한 가운데 이것이 100 이상 세계를 이끌어 선진국 지도자들의전통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의 본보기인 것이다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147. 철종의 가계도 ..
59. 초락도 금식 기도..
<94-총회총대5>
332. ‘기도합니다’와..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박래창 장로(전국장로회..
만평,만화
햇볕보다 더 뜨거운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동역자 된 장로들, 빛.....
44회 전국장로수련회 - 영적 충.....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