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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알
[[제1589호]  2018년 4월  7일]


객관적 역사인 부활의 신비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오래전 말씀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렇다. 죽어 다시 사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믿음의 요체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계속 이어지는 생에 대해 가르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만큼 죽음과 부활을 그 중심에 두는 종교는 단언컨대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죽는 것이다. 그러나 죽는 조건을 충족시켰으니 부활과 영광이라는 결과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적 거래이지 죽는 것이 아니다.

오늘 교회의 지도자는 얼마나 죽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 의미를 깊이 성찰하지 않는데 어떻게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을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보루라고 생각했다. 본 회퍼도 값싼 은혜를 통해 교회 지도자들의 죽지 못하는 형태를 통렬히 비판했다. 부활절을 보낸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다.

요즘 11권으로 출판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고 있다. 춘추시대의 기틀을 다진 재상은 관중(管仲)이다. 우정의 대명사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그 관중이다. 그가 발탁된 과정이 흥미롭다. 관중은 공자 규를 옹립하려고 거사를 일으켜 실패한다. 춘추시대 첫 패자가 되는 환공을 죽이려다 실패한 것이다. 죽음 때만 기다리는 관중이 죽지 않은 것은 환공 편에 선 포숙아 때문이다. 포숙아가 환공에게 관중을 도리어 재상으로 천거한 것이다. 배포가 큰 환공은 포숙아의 천거를 받아 관중을 등용한다. 그 결과 명재상이 된 관중의 시대가 열린다. 중국 역사상 제갈량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평가받는 관중이 발탁되는 배경에는 포숙아의 희생과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숙아는 결코 자신도 부족하지 않았으나 더 큰 목표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가장 강한 욕구 중 하나인 권력욕을 죽인 것이다. 포숙아는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 정치의 근본을 세우는 일, 백성과의 신의를 세우는 일, 예의 규범을 제정하는 일, 군대를 통솔하는 일 등 다섯 가지에서 관중에게 뒤진다며 자신보다 관중을 등용하라고 환공을 설득하는 모습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포숙아가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면 관중도 제환공도 결코 있을 수 없다. 죽음으로 사는 표본으로 삼을 만하다.

죽어서 사는 일은 이런 거대한 국가의 경영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정, 교회, 노회, 총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죽어 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무사성사(無私成私)라고 했다. 나를 버린 자가 결국은 나를 얻는다는 역발상 철학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할 것이다.

구춘서 목사<한일장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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