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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
[[제1590호]  2018년 4월  14일]


추억과 욕망을 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워 죽은 대지에 라일락을 키워내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작은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이며 망각의 눈(snow)으로 덮어준 겨울은 따뜻하게 우리를 지켜 주었다. 운율(Rhyme)을 무시하고 번역해 본 T. S.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의 첫 단락이다

황무지란 시 전체는 읽어보지 못해도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말은 한 번 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엘리엇은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건만 영국에 귀화하여 성공회 교인이 되었다. 부인과 별거한 후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만나지 않고 있다가 그녀가 죽자 연하의 여성과 결혼했다. 불행한 이 시기에 대해아내에게는 불행을 자신에게는 이 시를 쓸 마음의 상태”를 주었다고 그는 후술했다. 결국, 이 시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아내의 불행을 노벨상으로 바꾼 것이라고나 할까.

생명이 약동하는 새봄의 자연을 바라보며 잔인함을 느끼는 시인의 감수성은 뒤로 하자. 그러나 그의 시와 그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영광스런 모습 뒤에는 아픔과 희생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부활의 환희를 노래하는 절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 뒤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과 희생이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십자가가 우리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인한다고 마틴 루터는 그렇게 강조해 마지않았던가? 우리 인간들을 향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십자가 사건이 아닌가?

폴 틸릭(Paul Tillich)이란 신학자는 옥합을 깨뜨려 순전한 나드 향료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이름 없는 여인의 행위를 거룩한 낭비(holy waste)라고 하였다. 일견 낭비처럼 보이는 이 행위에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치밀하게 목표를 계산하고 예산을 세우고 계획을 시행하여 결과를 얻고자 하는 우리의 행위에 비교해 이 여인의 행동은 어리석고 낭비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앞뒤 계산하지 않고 사랑하는 행위에 의해 역사는 추동되어 왔다. 자기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진전된다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교회는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의 극치다.

교회는 시간을 낭비하고 재능을 낭비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기적인 계산과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멀다. 불행히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으로 진단 받을 수밖에 없다. 엘리엇의 시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망각하고 부활의 영광만 노래한다면 우리의 눈부신 사월은 너무나 잔인하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잔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낭비가 바로 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구춘서 목사<한일장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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