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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호]  2018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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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성경으로 본 인권
[[제1621호]  2018년 12월  1일]


달력을 보면 무슨날’들이 많다. ‘설날’, ‘장애인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한글날’, 심지어 익숙지 않은문화의 날’, ‘과학의 날’ 등등. 기념일이 많다. 혹시 달력에서세계 인권의 날’도 본 적이 있는가. 유엔 총회에서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세계 인권 선언’을 선포한 1948 12 10일을세계 인권의 날’로 정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를 형제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1) 인류 전체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다움을 지키자는 약속의 최소 목록이 전문과 30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인류가 겪은 제2차 세계 대전과 잔학한 행위의 참상을 기억하면서 인권, 평화, 발전,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다. 전후 세계를 이끌어 갈 동등한 가치임을 확인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이 필자는 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알 수 있다(창세기 1). 뿐만 아니라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의 생명 기운이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명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뿐만 아니라 생령(네페쉬 하야. a living being)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전인적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됐다. 에덴동산 상실과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됐다.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다. 성육신이 구원이다. 인간다움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권회복이다. 구원은 영혼구원뿐 아니라 사회구원도 있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통전적인 구원이다. 동전의 양면이다.

필자 교회 현관에는 렘브란트의탕자의 귀환’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 안에 탕자의 아버지 모습에서 양손을 보면 한 손은 아버지 손처럼 투박하고 거칠다. 바로 정의와 올곧음의 손이다. 다른 한 손은 어머니의 손처럼 섬세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다. 자비와 사랑의 손이다. 정의와 사랑이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이다. 예수의 나사렛 선언이 인권 선언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여더라( 4:18-19).” 이사야(61:1)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 나간 탕자처럼 고달프다.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양극화된 사회다. 사회정의와 사법정의가 실종됐다. 적폐청산이 되지 않고 있다.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잊히고 있다. 그래서 아모스 예언자가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5:24)”라고 외친 것이다. 또한 가난하고 소외된 소수자들의 아픔과 절규다. 버스를 자유롭게 타기 위해서 버스에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고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들, 특히 낙인 찍힌 소수자인 노숙자, 동성애자, 난민, 노인, 어린이, 여성, 이주민, 농민, 도시빈민,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등등. 차별과 배제의 구조 속에서 몸부림 치고 절규하는 소리를 듣는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인권 감수성이다. 양과 염소 비유 그대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40).” 신앙의 사회적 실천이다. 사랑과 자비의 어머니 모습이다. 호세아의 사랑이다. 아모스의정의’와 호세아의사랑’, 이사야의신앙’, 그리고 미가 예언자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2018년은 세계 인권선언 70주년이다. 한국교회는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의 회복을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장헌권 목사<총회 전 인권위원장 광주 서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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