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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서
[[제1670호]  2019년 12월  28일]


소설가 한 분이 암으로6개월길어야 일년 시한부 생존 진단을 받고 글을 시작했다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하면서1,200매를 써서 출판사에 가지고 가 무슨무슨유서’라는 제목을 달아 달라고 했다편집자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장르에 넣어 책을 출간했다내용은 작가가 살아온 고난과 성취의 인생의 틀에 아내와의 사랑신앙의 성장에다 문학 활동과 교수생활 중에 있었던 여성관계까지 솔직한 고백을 담았다

그런데 책이 나온 후 건강이 다소 회복되는 징후가 보이더니 의사가 심각하게 일러준 시한을 넘기며 그는 살고 있다특별한 것이라면 인터넷에 암치료제라고 회자되는 애완동물 구충제를 복용한 것뿐인데 정말 그 효험을 보는 것인지 또는 기도에 응답하시어 치유의 은총을 내려주신 것인지 가족은 분간하려 들지 않는다잘은 모르겠지만그 소설가는 자신이 하나님과 세상에 책으로 내놓은 고백으로 마음의 모든 짐을 덜어버려 영적인 정화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새 힘을 공급받아 병을 이겨내고 있다고 믿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어찌됐건 새해에 새 생명을 얻어 기뻐하는 영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유서’라 생각하고 적나라한 디테일을 담았기에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책에 이름이 나오는 지인들에게 많이 미안한 생각도 들겠지만 모든 것이 진실이요 과장이나 꾸며낸 것이 아닐진대 부끄러울 것 없고 누구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인간의 삶에는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들어 있어 소설의 소재로서 부족함이 없다이는 모든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지 꼭 유명한 모험가나 사상가정치가만의 경우가 아니다.

“내 인생은—” 하고 누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갯마을의 촌부이건 할리우드의 스타이건 사랑과 미움고생과 행복의 에피소드들로 쉽게 한 권의 책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읽는 이들은 진실에 감동하고 거짓에 혀를 차고 불운에 안타까워하게 된다병으로 곧 모든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떠나갈 사람에게는 어휘의 선택이나 문학적 전개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진실과 진리에 다가가는 것만이 목표가 될 것이다나사렛 청년 예수의3년간의 사역이 남긴4복음서와20여 편 사도들의 서신은 주옥 같은 명문이 아니어도 인류 역사를 바꿨다

모든 사람이 길든 짧든 시한부의 진단을 받은 셈이니 새해를 시작하며 나이든 사람들은 참회록형 유서를 시도해 볼 수 있다그런데그럭저럭 괜찮게 살아온 듯했던 마음에 굵게 걸리는 것이 있다엊그제 교회에서 가깝지만 가보지 못했던 도산기념관을 방문해서 안창호 선생의 어록을 받아왔다

“성서가 창세기로부터 묵시록까지 이름이 혹 겸손이니 선함이니 하여 좀 다르다 하나 한낱 사랑이외다예수교의 宗旨는 사랑이니 이를 행함이 절실하여야 하겠소이제 한 빈곤한 사람이 앓는데 문병하러 가서 신령한 말로써 병 낫기를 빌고 제 주머니의 돈은 한 푼도 안 내어 약이나 미음으로 구원치 아니하는 것이 과연 신령하오니까아무것도 아니하고 제 주머니의 돈을 내어 구원케 하는 것이 신령한 것이외다.” 내가 낳기도 전에 돌아가신 도산의 말씀이 내 안에 숨은 수많은 민망한 이력들을 줄줄이 끌어내신다그래서유서’는 또 미뤄지고 만다.

김명식 장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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